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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수 논설위원이 쓴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30%에 못 미친다. 과거 대통령들의 취임 후 6개월 때와 비교하면 역대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1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승전보에 힘입어 오른 게 그 정도다. 심각한 것은 이 대통령의 최대 간판 상품인 ‘경제 살리기’에서 최하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여러 국정분야 중에서 경제 살리기를 가장 못했다고 평가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로 치면 다른 종목도 부진했지만 유독 자신의 주력 종목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은 셈이다.
취임 6개월 동안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급등했으며 주가는 폭락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경제 실적 부진의 책임을 온통 이 대통령에게만 묻는 것은 야박하다. 고유가와 세계경제의 침체, 쇠고기 촛불집회 등의 영향이 컸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바람 같은 민심이 그렇게 부는 것을. 어쩌면 경제 살리기를 지나치게 부각시킨 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았으니 실망이 더 클 수밖에.
그러나 국민들의 실망감이 꼭 실적이 나빠서만이었을까. 사실 지난 6개월간 경제의 궤적을 보면 누가 했어도 그보다 잘하기 어려웠다. 이명박 경제팀이 몇 가지 어설픈 정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경제는 어차피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큰 실망감에는 실적말고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나는 그 실망감의 잔여분은 신뢰의 상실에서 왔다고 본다. 정부 정책에 믿음이 가지 않게 된 것이 실망감을 실제 이상으로 키운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역대 최대의 표 차로 이 대통령을 뽑아준 데는 뭐라 해도 전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큰 몫을 했다. 국민들은 분배를 앞세운 노무현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을 성장 중심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경제에서 정부 몫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늘려달라고 했다.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부추기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경제 살리기’를 약속했고 그래서 당선됐다. 그렇다면 그 약속대로 갔어야 했다. 747 공약이나 대운하 공약은 성장 중심, 시장 중시, 규제 철폐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 살리기’ 패러다임의 하부 사업에 불과하다. 여건이 나빠지면 7% 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 그걸 못했다고 국민이 실망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의 패러다임은 다른 얘기다. 큰 틀에서 성장 중심, 시장 중시, 규제 철폐가 옳은 방향이라면 여건이 달라졌다고 바뀔 게 없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성장을 지향하고 시장을 중시하며 규제를 없애야 할 이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규제는 못 풀겠다고 하고, 노무현 식 부동산 규제도 못 바꾸겠단다. 공기업 민영화는 흐물흐물 형체가 흐려졌으며, 세금 인하 약속은 뒤집혔다. 이게 다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나타난 증상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익집단의 조그만 반발에도 정책이 흔들리고 뒤바뀌기 일쑤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우왕좌왕한 끝에 좌파 세력으로부터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비난을 받을 판이다. 국민은 우회전하라는 신호를 줬고, 실제로 우회전 깜빡이도 켰는데 차가 한 번 덜컹거리고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자꾸 왼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신뢰의 상실은 바로 이런 데서 싹튼다. 차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데 운전자에게 믿음이 가겠는가.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는 시절 좋을 때 선거용 구호로 나온 게 아니다. 경제가 정말 어려웠을 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경제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었다. 대처와 레이건은 그에 대한 사명감과 확신이 있었기에 이익집단의 반발을 무릅쓸 수 있었고 결국은 경제를 살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