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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문재완 한국외국어대교수(법학과)가 쓴 시론 "촛불 들었다고 다 '촛불집회'가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무능한 정부와 계속되는 집회로 마음이 무거운 국민들이 많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요즘 종전과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다. 촛불집회가 쇠고기 문제에 그치지 않고, 공기업 민영화, 공영방송, 교육 등으로 의제가 확대되었다. 이를 추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일부 시민은 특정 언론사를 찾아가 회사 깃발을 내리고, 출입구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을 마치 승전보를 전하듯 보도하는 인터넷 언론사도 있다.새로 전개되는 집회는 촛불집회가 아니다.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첫째 집회의 성격에 있다. 촛불집회는 권력자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뜻을 평화적으로 전달하는 시민이 모인 곳이다. 쇠고기 촛불집회 역시 의사소통 단절에 대한 저항의 뜻이 담겨 있었다. 쇠고기로 촉발되었지만, 본질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항변이었던 것이다.
최근 집회는 종전과 달리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을 설정하고 이와의 전쟁을 성전이라고 주장하듯,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를 특정하고, 이를 퇴출시키는 것이 정의인 듯 행동한다. 이는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자기 의견만 옳고, 그러한 의견을 피력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 언론사라는 식의 주장과 행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다.
두 번째로 시위의 행태가 달라졌다.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집회는 표면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언론을 옥죄고 있다. 특정 언론사를 밤에 찾아가 스티커 붙이고, 쓰레기를 쌓아 놓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불만의 의사 표시로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간 것이다. 나의 자유는 상대방의 자유와 만나는 곳까지다. 광고 불매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그렇다. 보기 싫은 신문을 보지 않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특정 신문사를 암적 존재라고 강변하고, 그 신문사에 광고 낸 기업에 광고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광고 불매운동은 기업이 광고를 통하여 자기 상품을 알릴 권리와 독자가 광고를 통하여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면서 전개될 수는 없다.
최근 집회에서 내세우는 명분들은 대부분 본격적인 논의도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다. 쇠고기 촛불집회는 어느 학자의 표현대로 '허약한 민주주의의 구원투수'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는 정상적인 투수 운용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국가 의사는 대통령과 국회가 정한다. 정당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국가 의사와 국민의 의사를 매개하는 역할은 정당이 한다. 쇠고기 촛불집회는 이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주요한 국사를 모두 집회에서 결정하겠다는 식으로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공영방송의 경우 공영방송의 기준이 무엇인지,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공영방송은 몇 개가 적절한지, 공영방송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토론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아고라(agora)를 외치면서 '공영방송'에 대한 논의를 막고 '지키기'만 외친다면, 그 목소리는 기득권 수호로 들릴 수밖에 없다.
시민 저항권의 성공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특정 집단의 승리는 국가발전을 저해한다. 더욱 큰 문제는 한 번의 승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얼마나 변하느냐 못지않게 새로운 유형의 집회와 시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은 새로운 유형의 권력남용에도 눈을 크게 떠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