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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말해서 혁명가적 정치행동, 나쁘게 말해서 모반적 정치행동을 연상시키는 최근 정두언 의원의 극렬한 발언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쥐죽은 듯 가만히 엎드려있는 원로정객 이상득 의원을 끝없이 물어뜯고, 정치원로인 이의원을 고려장시키고자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면서 떼지어 돌격하는 정치인 정두언의 표독한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배반의 세월’과 ‘권력의 무상’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 의원은 그의 동생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었더라면, 누가 뭐래도 자연히 차기 국회의장은 따놓은 당상이었다는 사실을 정 의원은 이미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이 의원을, 이토록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일까.
정 의원에게 충고 한마디. 정 의원에게 "허화평 전 의원의 정치적 모델을 본받아라"고 충고하고 싶은 것은 웬일일까. 허 전 의원은 5공화국 창건 주역이자 명실상부한 실세 2인자였다. 당시 필자는 대통령주치의이자 국군서울지구병원 부원장으로서, 실세였던 허 전 의원을 가까이서 눈여겨 볼 수 있는 진실로 아름다운 기회를 갖게 되었다. 허 전 의원의 정치철학은 대단히 고고했고 또 교훈적이었다. 그는 많은 이들로부터 차기 대통령은 허화평이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여론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몸을 낮추고 겸손의 길을 택하였다.
당시 압도적인 여론은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 1순위가 곧 허화평이었다는 사실이였다. 그만큼 그는 위기 관리자로서, 또 공직자로서 탁월한 능력과 인품과 덕목을 검증받았고 깊은 사상가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었던 것이다. 허 전 의원은 그가 5공화국의 이념 좌표로 내세웠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었고, 그가 추구했던 자유민주 이념을 충실히 수행했던 학자적 군인이었으며, 민의를 최고의 가치로 아는 민주형 정치가였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권력 밖으로 나가 달라는 뜻을 요구받고 비굴하지 않게 권력의 품을 과감히 박차고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가서 수석연구원으로 그 이름을 국제사회에 떨쳤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세계적 석학이라는 별칭까지 부여받았을 정도이니 수석연구원 생활 5년간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이념은 날개가 아니다'와 '지도력의 위기(1, 2권)'라는 그가 쓴 대표적인 저서는 현실정치, 한국의 근·현대사, 세계사적인 정치사상사 그리고 이와 관련한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정의에 관한 심원하고 원숙한 그의 식견이 쉬운 필체로 잘 펼쳐있어 가히 이 분야에서는 그를 필적할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 의원은 지식과 사상적인 측면에서 또 국가와 국민에 대한 열정적인 지향의 모델정립 과정이 허 전 의원과 비교는 가히 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2인자의 입장을 강하게 풍겼던 상황 논리적 측면에서 보면 정 의원은 허 전 의원으로부터 엄청난 많은 것을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허 전 의원에게 한수 배우기를 부탁드린다.
정 의원은 허 전 의원으로부터 ‘충성’과 ‘신의’와 ‘애국심’의 가치를 확실하게 한수 배웠으면 한다. 허 전 의원은 그가 온힘을 다하여 내세운 전 대통령으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정치적 고통을 당했지만, 정무수석비서관을 그만 두고 쉬라는 대통령의 명을 받자마자 아주 조용히 몇몇 지인들에게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겠다는 말 한마디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써 조용히 정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정계진출 또한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심지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도움조차도 받지 않고 홀로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전국 최다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허 전 의원은 오늘날까지 전 전 대통령을 단 한번도 비판하거나 비난한 적이 없다. 허 전 의원은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을 가끔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걸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황당무계한 5·18특별법 제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었지만 재판정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신념 및 자신의 국가관을 솔직담백하게 증언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또 그는 옥중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멋들어진 정치인이자 사상가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정 의원은. 정 의원이 과거의 허화평과 같은 입장에 있었더라면 요즘 행하고 있는 정치 행태를 관찰해볼 때 반드시 혁명(?)했을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선다. 정 의원은 말로는 충성 충성하며 생육신 운운하면서도 결론적으로 이 대통령을 ‘항복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적쇄신이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내걸고 실질적으로 생명을 걸어놓고 극한적 권력투쟁에 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 의원이라고 표현한다면 내가 정두언을 잘못 본 것일까. 정 의원이 추구하는 쇄신이란 청와대 권력을 접수하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맴도는 것은 솔직한 내 심정이다.
권력사유화 및 인사실패 책임자 거취 결단을 주장하는 정 의원의 벼랑 끝 정치전략적 전술구사 행태는 한마디로 이의 대통령 권한을 절반쯤 빼앗아 스스로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간헐적으로 엿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원로 정치인 이상득 의원을 장애물이라고 판단하여 몰아내고 대통령의 권력을 무력화 내지 약화시키려는 권력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이미 굳혔을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에 대해 무한책임을 갖고 있으며 이 대통령을 위해 죽으라면 죽을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그의 말은 도저히 현 상황에서 진실되게 이해될 수 없고 설득력도 없다. 정 의원 말대로 목숨을 바치고 지켜야 할 이 대통령이 사상초유의 정치적 고통 속에 헤매이고 있음을 기화로 여권 분란과 권력투쟁을 위한 폭풍 주역으로 선두에 서서 총지휘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목숨바쳐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고작해서 대통령 형이라는 이유로 조용히 지내는 원로정객의 숨통을 끊어놓아서야 말이나 될 법인가. 더욱이, 민의에 의하여 뽑힌 국회의원을 감히 정 의원이 무슨 권리로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 의원은 이 의원의 숨통을 죽여놓고 난후 ‘정두언 천하’를 만들어 이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후 실권 잡은 대원군으로 등극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 대통령 뒤에서 수렴청정하겠다는 말뜻인가. 박영준 비서관에게 정치적으로 실권을 빼앗긴 데 대한 얄팍한 보복으로 그의 십여년 전 옛 상사인 이 의원까지 연좌시켜 대통령 형이라는 이유로 죽여 놓아야만 직성이 풀리고 또 자기의 목표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 중의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정 의원이 큰 정치가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허 전 의원으로부터 많은 공부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 한마디 그려보는 것이다. 국가가 위기라고 생각될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더욱이 대통령 측근으로서 그 어느 누구보다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에 충실해야 실세라고 할 수 있으며 아울러 위기 관리자로서 또 대통령 보위자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고 국민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을 겸허히 보좌할 수 있는 덕목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 의원은 명심해야 할 것 같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