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문학진 통합민주당 의원은 자당의 손학규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문 의원은 '손학규 정체성'을 문제삼았다. 손 대표가 제시했던 '제3의 길' '새로운 진보'란 노선이 결국 '실용'이란 타이틀을 건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 되지 않아 자당 지지층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 의원의 비판 뒤 그가 속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은 10일 '민주당의 나아갈 길'이란 토론회를 열었다. 김근태 전 의원 등 재야출신이 포진돼 있는 모임인데 문 의원 역시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문 의원과 비슷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자당의 정체성 확립이 최우선 과제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이날 모임에선 7월 6일 계획된 전당대회의 연기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목희 전 의원은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정체성 혼선으로 지지층이 분열된 지금의 상황,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별 지분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도부 교체는 무의미 하다는 게 이들이 내린 진단이다.

    문 의원의 비판으로 촉발된 '정체성' 논란은 민평련 토론회를 통해 확전됐고 급기야 12일에는 이 모임에 속한 일부 의원과 당권 도전을 저울질 하던 천정배 의원 등 전·현직 의원 16명이 가세하며 보다 구체화됐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까지 열어 현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은 "현재의 민주당은 10%대의 당 지지율, 비전과 리더십 부재, 정체성 혼란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했고 "무엇보다 7·6 전당대회를 앞두고 조직 강화 과정에서 '계파별 지분 다툼, 자기 사람 심기'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온 국민이 촛불집회로 밤을 지새울 때 우리 당 내부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란 자성도 나왔다.

    이들은 회견에서 민평련이 주장했던 전당대회 요구를 당 지도부에 제안했고, 현 지도부가 물러나 당 안팎의 원로들을 모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라고 촉구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선 "안 들어주면 할 수 없지"라고 했지만 "문제 제기를 하는 집단조차 없다는 게 더 문제"라며 자신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정작 논란을 촉발시킨 문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해 앞선 민평련의 토론회과 전·현직 의원 16명의 목소리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가 읽은 회견문은 앞서 회견을 한 16명 전·현직 의원들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 의원 역시 "7월 전당대회가 아무런 '감동'없는 전당대회가 될 때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의 들러리가 될 것이고, 정당정치의 빈곤 속에 혼란은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7·6 전당대회는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16명의 목소리와 맥을 같이 한다. 비슷한 이념을 갖고 현 정국에 같은 진단을 내렸지만 해법을 두고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인데 문 의원의 '손학규 정체성' 비판이 결국 자신의 최고위원 출마를 위한 '정치적 액션'에 불과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