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 사설 '대통령은 누구와 얘기하고 통화하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무성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4일 한미 FTA 청문회에서 "이번 국회에서 꼭 비준해야 하는 협정인데 (대통령은) 그런 의지도 없는 것 같다"며 "미국에 가서는 미국 의회 지도자를 만나면서 의회 비준을 강력하게 요구하던데 왜 정작 한국 국회에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가. 저한테도 전화 한 통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여당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 이렇다니 야당에게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전(前)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야당 근처에서 청와대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전화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역시 청와대 정무수석 경험이 있는 민주당 이강래 의원도 "과거에는 몸싸움을 하더라도 청와대와 야당의 물밑 대화를 통해 정보를 교류했다"며 "지금은 그런 노력조차 없어 안타깝다"고 했고, 다른 중진 의원은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전화도 못 받았다. 많이 바쁜 모양"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국민과 역사 앞에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사흘 연속으로 국민과 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한 점을 반성한 것이다.

    국민이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대통령과 다른 국민의 생각을 제일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 야당이다. 서로 원칙이 다를 수는 있지만, 상대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있더라도 파열음을 최소화할 수 있고, 국정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은 그 과정을 보면서 안심도 하고 믿음도 갖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바로 대통령이 얘기하고 있는 '소통'이다.

    소통을 하려면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만나면 통역이 필요할 지경이라고 한다. 누구는 금성에서 왔고, 누구는 화성에서 온 것 같다고도 한다. 이래서야 소통이 될 리가 없다. 두 사람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박 전 대표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기본적인 조건이 풀리지 않으면 소통은 일어날 수 없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측은 "청와대가 쇠고기 협상 등 최근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적이 없다. 제1 야당 대표에게 이 정도면 다른 야당들과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손 대표는 누구보다 먼저 한미 FTA 찬성 입장을 밝힌 사람이다. 대통령이 이런 야당 대표와 기본적인 대화조차 없었다면 야당을 야당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고 볼 수가 없다.

    대통령은 미·일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초청하지 않았다. 자유선진당이 국회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 총재는 대선에서 15%를 득표한 사람이다. 그의 당은 총선에서 대전·충남권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대선 때의 감정을 갖고 이런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른 누구와도 소통이 될 수 없다.

    지금의 청와대가 대통령의 '소통'을 보좌할 수 있는 체제인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해온 일을 보면 그 정치적 역량이 역사상 최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실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래도 정치를 알고 소통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사람 자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실장은 대통령 연설 원고 고치는 일부터 그만둬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제 자신이 모든 것을 먼저 바꿔 나가겠다. 남에게 바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먼저 바꾸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만 제대로 지켜도 국정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