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글로벌 아이'에 이 신문 남정호 뉴욕특파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99년 9월 독립분쟁으로 1000여 명이 살해됐던 ‘살육의 땅’ 동티모르. 여기에 파견됐던 유엔 선거감시단에 절박한 선택이 강요됐던 걸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당시 거기선 영화 ‘르완다 호텔’에 등장한 절체절명의 상황이 펼쳐졌다. 동티모르 분리독립안이 통과됐다는 투표 결과가 발표된 9월 4일. 발표가 나오자 분리에 반대한 민병대가 미친 듯 주민들을 쏴 죽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난민 2000여 명은 유엔감시단 본부 영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살기 띤 민병대는 건물 주위에 진을 쳤다. 여차하면 공격할 태세였다.

    최악의 사태에 몰린 유엔은 대피작전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일부 한국 요원에게 물었다 한다. “난민들과 남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이들은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사지에서 탈출했다”는 게 한 유엔 관계자의 회상이다.

    반면 외국, 특히 북유럽 요원들은 달랐다. 많은 수가 남았다. 묘하게도 그 이유가 같았다. “가족 때문”이었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두고 오면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되짚어 보면 한국인들은 타 민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데에는 인색한 듯하다. 베트남전 후 한국군은 유엔군과 다국적군 헬멧을 쓰고 여러 번 외국 땅을 밟았다. 앙골라·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 굵직한 파병지만 9곳이다. 그때마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최근까지 공병부대·의무부대가 주종이었다. 보병부대가 가도 이라크 아르빌 같은 안전지대만 찾아다녔다. 이 덕에 17년간 연인원 2만8000여 명을 파병했다는데 교전 중 전사한 경우는 없다. 다만 지난해 2월 아프간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부대 정문을 지키던 병사가 숨졌었다. 나머지 7명은 모두 사고사다. 지난달 네팔서 헬기 추락으로 박형진 대령이 순직했고 6명이 1995년 그루지야(1명)와 2003년 동티모르(5명)에서 익사했다. 파병 생색은 내면서 고귀한 목숨을 아끼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런 한국과 대비되는 게 캐나다다. 2002년 이래 80여 명의 아프간 파병 병사가 희생됐다. 그런데도 캐나다 의회는 지난달 198대77로 아프간 주둔군 2500명의 파병 연장안을 통과시켰다. “평화정착이란 최종 목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캐나다 정부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21세기 최악의 인종학살장이란 수단 다르푸르에 간 적이 있었다. 지난 5년간 20만 명이 도륙된 ‘킬링필드’다. 모든 게 낙후돼 살해 방법도 원시적이다. 대부분이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숨졌다. 여기에선 헬기가 최첨단 무기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숫자가 희생됐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격하니 “한국의 보병 일개 연대만 보내도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 해외파병이 또 한번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친한파로 사랑받는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가 나서 아프간 재파병을 언급했다는 소식이다. 그러자 이라크전 같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더 이상 도우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평화유지활동(PKO)이 근본적으로 현지인들을 돕는 인도주의적인 일이라는 점 말이다.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치안유지를 지원하는 건 누가 뭐래도 그 자체가 고귀한 일이다. 게다가 평화유지활동은 분단국 한국에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통일이 되면 북녘 땅의 치안은 누가 맡겠는가.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2~13위다. 군사력은 6~7위권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런 나라의 유엔 PKO 기여는 참으로 초라하다. 올 2월 기준 유엔 PKO 규모는 10만9000여 명. 이 중 한국군은 404명이다. 이러고도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려 한다면 과욕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유엔이 피 흘리며 지켜준 나라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