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10년 전 대통령 취임식 사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갔었다. 취임식장 입구에서 경찰과 경호 관계자들이 겹겹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초청장을 확인하며 안내를 했다. "보라색 티켓은 가운데로 가시고, 녹색 티켓은 왼쪽으로 가시고…." 초청 유형별로 초청장 빛깔을 달리해 좌석 위치를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 넓은 의사당 광장에 간이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취임식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좌석의 5분의 4 정도가 이미 채워져 있었다. 단상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히 멀었다. 행사장 밖 노점상 꼬임에 빠져 구입한 1만원짜리 망원경으로도 단상 위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1000명 정도가 저기 앉았다는데, 외빈 250명 국민 대표 50명을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에서 힘쓸 사람들 순서로 좌석이 짜였을 것이다.

    전체 초청 인원은 5만 명이라고 했다. 4800만 국민의 0.1%쯤이다. 이명박 대통령 또는 참모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누구보다 반길 사람들일 것이다.

    식전 행사에선 가수 김장훈이 '우리 기쁜 날'을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렇게/멋진 일이 내게로/찾아와/가슴 벅찬 순간엔…"이라는 후렴구가 반복됐다. 이날 취임식장을 메운 상당수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을 법했다.

    취임식 시작 5분 전, 이 대통령이 행사장 입구에 도착했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대통령의 상징으로, 이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씨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초청객들과 인사를 나눌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경호팀이 "좌석에서 일어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대통령의 입장을 지켜 보려는 하객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었는데도 행사장에 도착한 지 1시간쯤 되자 손과 발이 얼어올 정도로 날씨가 차가웠다. 그러나 그 같은 체감온도는 필자 같은 관찰자 입장에나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양복 차림으로 단상에서 취임사를 낭독하는 이 대통령의 얼굴에서도, 식장을 메운 초청객들의 모습에서도 추위를 읽을 수는 없었다. 이 대통령이 힘주어 국정방향을 밝히는 대목에선 어김없이 박수가 터졌다. 좌파에서 우파로 10년 만에 정권이 되돌아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넘겨지고 있었다.

    필자는 10년 전인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던 그날부터 정치부의 정당 담당 기자를 시작했다. 막 집권당이 된 국민회의 의원들의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어느 방에나 김 대통령의 취임식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의원들은 그 사진을 쓰다듬으며 감격스러워하곤 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할 무렵에도 필자는 민주당으로 이름이 바뀐 집권당을 출입하고 있었다. 당사 대표실 앞에 걸려 있던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사진을 당직자와 함께 들여다 보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DJ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사진 속 등장인물 상당수가 5년 만에 노사모 회원으로부터 '역적' 또는 '역적 중의 역적'으로 손가락질당하고 있었다. 이미 철창 신세를 진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DJP 연합의 반쪽 당사자였던 자민련 의원들은 남남이 된 지 오래였다. 함께 사진을 들여다 보던 당직자는 "5년 만에 권력지도가 이렇게 바뀌다니 놀랍지 않으냐"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돌아오며 그때 일이 생각나 다시 그 사진을 뒤져 봤다. 김대중 대통령 주변에 있는 약 50명의 얼굴 중 아직도 정치권 현역으로 활동 중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10년 전 정권의 취임식 사진을 한번 들여다 봤으면 한다. 권력의 부침(浮沈)이라는 역사의 철칙을 다시 확인하며, 앞으로 5년의 국정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