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가 기고한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불량좌파 상품' 으로부터 선량한 국민들 보호해야

    민노당 비상대책위가 대선 참패 극복을 위해 내놓은 당 혁신안이 지난 3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거부됐다. 당내 소수파인 평등파(PD파)가 마련한 혁신안의 골자는 386간첩단 '일심회 사건' 관련자의 제명 등을 통한 '종북(從北·북한 노선 추종)주의 청산'이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NL파·주사파)는 "민노당이 쓰레기 같은 국가보안법에 굴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혁신안을 거부했다.

    나는 우파(右派)지만 민노당의 개혁 좌절이 안타깝다. 우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좌파의 건전한 견제는 필수적이다. 좌든 우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한 법이다.

    평등파를 지지하는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최근 민노당 사태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을 폈다. 그는 주사파와 보안법이 '적대적 공생(共生)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사파가 입고 있는 보안법의 갑주(甲?)를 벗겨내 국민 앞에 '알몸'으로 서게 하면 종북의 주사파는 생존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며 보안법 철폐를 촉구했다.

    진 교수의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틀렸다. 그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보안법과 주사파의 과거와 현재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첫째, 과거의 적대적 공생관계와는 달리 현재의 주사파는 보안법과 무관하게 생존 가능한 광신도 집단이 되었다. 둘째,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와는 달리 현재의 보안법은 일종의 '소비자보호법'이 되었다.

    우선 첫 번째 논지부터 살펴보자. 진 교수의 주장대로 보안법을 철폐하면 주사파가 종북을 포기할까? 로버트 치알디니(Cialdini) 교수는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에서 여기에 대한 해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있었다. 종말론에서 예언한 날이 지나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 후 신도들이 실망해 그 집단을 떠났을까? 아니다. 오히려 주변의 냉대와 조롱을 무릅쓰고 그들은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주사파에게 종북은 종교적 신념이다. 종말론 신도들이 그랬듯이 보안법이 없어지고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더라도 진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대다수 주사파는 주체사상 전파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치알디니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이 법칙의 핵심은 현실이 당신의 믿음을 배신할 때는 "당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 확신시켜라. 그리하면 당신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로 요약된다.

    두 번째 논지는 주사파의 '불량 좌파상품'으로부터 소비자인 국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과 같은 통신판매가 활성화되면서 사기나 불량상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소비자보호법을 통해 불량상품 공급자의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 그래야 불량상품 공급의 원가가 비싸지게 되고 따라서 불량상품의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느슨하게나마 보안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사파 상품의 공급원가가 다소 높고 따라서 주사파가 활개를 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보안법이 철폐되면 주사파는 싸구려 불량 좌파상품을 대량 공급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국민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물론 진 교수나 나는 보안법이 없더라도 주사파 '알몸'에 현혹되지 않겠지만 통신판매 사기에서 보듯 주사파에 넘어가는 국민이 적잖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사파 불량상품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커지면 평등파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주축이 된 평등파는 민노당을 탈당해 4·9총선 이전에 새 좌파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평등파의 좌파상품 차별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보안법이라는 사실은 아이로니컬하지만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