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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자 조선일보에 류근일씨가 쓴 칼럼 <이회창씨의 '약속'>입니다.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씨의 출마 선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래서 좌파 종식이 무산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등의 그간의 우려와 비판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1장 1절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회창씨 출마에 틈을 제공한 책임은 이명박씨에게도 있다”고 한 일부의 주장도 그 나름의 논리적 근거는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이회창씨 자신이 “어떤 경우에도 정권 교체를 좌절시키는 일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한 이상 해법 역시 이회창씨의 바로 그 약속에서부터 역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순서상 필요한 것은 우선 앞으로 1주 또는 2주 동안은 이명박씨와 이회창씨가 ‘한반도 최고의 문제’에 관해 각자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다 쏟아놓게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어떤가, 그것을 배경으로 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본질에 부합하는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가 하는 등의 물음은 가장 중요한 쟁점임에도 이상하게도 너무 멀리 밀려나 있었다. 이회창씨는 바로 그 틈새를 조준해 화살을 쏘았고, 이명박씨 또한 재향군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에 대해 모처럼 선명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말의 물살’은 얼마 동안은 더 관성을 탈 수밖에 없다.
“원칙 없이 유화적으로만 흐른 대북정책으로 인해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이 증폭되고 한·미동맹이 이완되었다” “서해교전에서 NLL을 지키다 숨진 우리 장병들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북 지원은 북한의 개혁·개방 없이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고 이명박씨는 말했다. “이명박씨의 국가 정체성 인식이 불분명하다”고 한 이회창씨의 도전에 밀리지 않으려는 대응 발언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씨는 지금까지의 ‘오로지 실용’에 더해서 자의든 타의든 대북정책의 핵심 사항에 있어서는 자신이 ‘중도보다는 우파적’ 원칙에 서 있음을 의도적으로 내비친 셈이었다. 이래서 ‘안보’가 비로소 처음 야당 대선 담론의 주요 레퍼토리로 떠오르기도 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같은 시련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이명박씨는 “한반도 문제에 너무 분명하게 우파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386 참모들의 건의에 그냥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많은 유권자들은 이명박씨가 어떤 한반도관을 가진 후보인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표를 주거나 안 주거나 했을 것이며, 그랬을 때 ‘2007 대선’은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는’ 겉핥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논쟁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12월 초순을 넘겨서까지 마냥 끌고 가다가는 정권 교체 진영의 자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의 지지율 순위가 이대로 굳어져 우파가 1등도 하고 2등도 할 확실성이 체감되지 않을 경우에는 1등도 2등도 더 이상의 갈등을 마감하고 막판 대타협을 이룩하라는 강력한 요청에 직면할 것이다. 1등이 2등의 핵심 주장을 수용해 들이고, 2등이 대의를 위해 1등의 손을 흔쾌히 들어주기로 합의하라는 정권 교체 진영의 절박한 위기감이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의 386’들은 ‘박근혜에서 이회창으로’ 옮겨 앉은 20% 안팎 유권자들의 변수를 너무 과소 평가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근혜씨가 좌우할 10%의 표(票) 차이를 너무 평가 절하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이라면 이명박씨는 지금이라도 급히 ‘단독 집권’ 전략을 ‘집단 지도’ 전략으로 바꾸고, ‘시장 보수주의’를 ‘안보 보수주의’와 타협시켜야 할 것이다. ‘11일 이명박 기자회견’이 과연 그 시작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씨가 그렇게만 하면 이회창씨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함께 갈 수도 있다”고 한 자신의 말에서 더욱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