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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마주치지 않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6일 '어쩔수없이' 한 자리에 함께 했다. '농심(農心)'을 잡기 위해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두 후보는 악수만 겨우 두번 나눌 정도로 짧은 시간 마주쳤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불꽃이 튀었다. 농업정책을 설명하는 연설에서도 상대방을 향한 날선 비수가 들어 있었다.
두 후보의 '신경전'은 행사 참석 시각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후보와 정 후보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함께 입장하기를 바랐던 주최측의 의도와는 달리 이 후보가 오후 3시 30분 경 도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후보도 급히 일정을 조정, 오후 3시 10분 쯤 행사장에 도착했다. 정 후보는 곧장 행사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30분 정도 VIP룸에 머물다가 자신의 연설 시간이 다 돼서야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4시 10분 쯤 도착한 이 후보는 잠시 VIP룸에 머무른 뒤 정 후보가 연설하는 도중 입장해 정 후보와의 인사를 피했다. 두 후보는 정 후보가 연설을 마친 뒤와 이 후보가 연설을 끝낸 뒤에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을 뿐이다. 좌석이 나란히 배치돼 있었지만 각각 연설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자리를 떠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정동영 한 시간 지각해 '욕 먹으며 진땀'
"(교육) 황폐화 시키는 특수고 300개 설립에 반대" 이명박 공격
한 시간 쯤 늦은 정 후보는 '지각한 벌'을 제대로 받았다. 정 후보가 연단에 올라 "농촌에서 농사일을 할 때 넥타이를 메고 하는 것을 못봤기 때문에 넥타이를 풀고 왔다"며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지만 방청석에서 돌아온 말은 "시간 약속이나 제대로 지켜라"였다. 간간이 욕설도 들렸다. 그는 "오늘 6개 정당과 후보들이 다 나왔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가운데 한농연과 가장 인연이 있고 가까운 정당은 통합신당이라고 생각한다"며 "13대 걸친 한농연 회장 가운데 국회의사당에 가신 분이 두분 있고 농정 사령탑인 농림부 장관이 한분 나왔는데 세분 모두 통합신당"이라고 말했지만 '야유'는 그치지 않았다. "1300명의 농민이 농약을 마시거나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며 어려운 농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책임져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미FTA에 대해 "확실한 피해 보상 대책과 농촌 소득안정 대책, 부채 감소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며 "공격적으로, 도전적으로 개방의 파고를 넘자"고 주장했지만 역시 농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 후보는 연설 도중 이 후보가 등장하자 이를 의식 한듯 마지막엔 이 후보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농촌을 떠나는 주 원인이 교육 때문이다. 화순에 있는 한 공립 고교는 우수 공립고교로 지정돼 한반 학생수도 25명으로 적고 원어민 영어교사도 있다. 농민들이 자식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성공의 증거였다"며 "평준화를 해체하고 (교육) 황폐화 시키는, 특수화 학교 300개 만드는 교육에 반대한다"고 이 후보의 교육정책을 정면공격했다. 그는 "176개 농어촌 시군에 우수 공립고교를 적극 육성해서 농촌에서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정동영보다 더 늦은 이명박 "방송 녹화 때문에" 양해부터
"내가 바보냐, 부자만 들어가는 학교 만들게" 정면 반박
정 후보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이 후보는 "오늘 부득이하게 KBS방송 녹화를 정해진 시간에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늦게 왔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며 지각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참석한 농민들은 이 후보에게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이 후보가 "지난 10년동안 지나간 정권이 100조원 가까운 돈을 농촌에 넣었지만 결과가 무엇이냐. 10년전 가구당 900만원이던 부채가 2700만원으로 세배가 넘었다"고 지적하자 방청석에서는 "IMF 때문에 그렇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 아니냐"고 화살을 한나라당에 돌렸다. 그는 그러나 농민들의 '원성'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꾼다고 농촌 전체가 다 유기농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한다면 농민들끼리의 경쟁으로 값이 떨어져 수지 못 맞춘다" "농기계 사는데 정부가 50% 보조하지만 결국 농기계 만드는 회사만 덕봤지 농민은 덕본거 없다" "농업식품부를 만들어 농촌에서 식품까지 생산하는 2차 산업, 고부가가치 산업에 돈을 대줘야 한다" 등 농촌 현실에 맞는 경제 논리로 다가가 "맞다" "옳소" 등의 호응을 얻어냈다.
이 후보는 이어 냉담했던 농민들의 마음을 어느정도 풀었다고 판단한 듯 정 후보의 비판을 정면에서 되받아쳤다. 그는 "농촌에서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서울이나 도시로 아이들을 보낼 필요 없이 지금 농촌에 있는 공립학교를 정부가 하나씩 지원해서 기숙사형 공립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어려운 사람에게는 국가가 장학금을 줘서 (기숙사형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부자만 들어가도록 하는 것 아니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기회를 같이 주자는 것이다"고 '부자만을 위한 교육'이라는 비판을 반박했다. 그는 "내가 바보냐, 부자만 들어가는 학교를 만들게. 내가 어리숙해 보이느냐. 그렇지 않다"며 "아무리 정치지만…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공격하고…세번 거짓말 하면 진짜 같이 보인다고 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속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여러분은 아무 생각할 게 없다. 정치적 생각도 버려라. 농촌이 잘 사는 것만 생각하고 선택하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