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28주기 추모식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물결’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선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진하게 배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표는 검은색 치마정장 차림으로 행사시작 시각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해 추모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경선 이후 의정활동에 전념하면서 언론 노출을 극도로 조심해 온 박 전 대표로서는 오랜만의 ‘외출’인 셈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홍사덕 전 의원과 서청원 전 대표를 비롯해 유승민, 허태열, 김재원, 유정복, 송영선, 이혜훈, 문희, 김학원, 한선교, 이인기 등 ‘친박(親朴)’ 의원 10여명이 참석했으며 경선 캠프에서 일했던 실무진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추모식에서 보여준 이들의 모습은 박 전 대표를 위해 움직이던 경선 상황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8월 15일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 제33주기 추도식에서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했던 박 전 대표는 이날은 동생 지만씨에게 ‘양보’한 채 자리를 지켰다. 대신 추모식이 끝난 뒤 추모객 50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 묘소에 분향을 마치고 박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경선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박 전 대표의 패배를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보이는 지지자들도 많았다. 박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눈 사람들은 “기권하지 말라. 우리가 죽기 전에 (대선에) 나와라” “국민들은 너무 억울해 한다” “억울해 죽겠다” “틀림없이 이번에 나와야 한다” 등의 말들이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령연합회 회원이라는 한 노인은 “(박 전 대표의 경선 패배 이후) 죽으려고 했는데 (박 전 대표가) 대통령 되는 것 보고 죽으려고 더 살기로 했다”며 박 전 대표의 손을 꼭 잡았다. 박 전 대표는 악수할 때마다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사람들의 위로에 대해 답례하듯 눈을 맞추며 특유의 미소를 보냈다. 추모객들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인사는 30여분 동안 계속됐다.

    박 전 대표의 경선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은 추도사에서도 묻어났다. 공정식 전 해령대 사령관은 추도사 말미에 “각하의 리더십을 닮은 큰 영애 근혜씨가 이번에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서서 석패했지만 앞으로 국가의 자유민주주의체제 발전과 국가 안보 등에 선도적 역할 하는 정치지도자로서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응원과 큰 기대 갖고 있다”며 “우리 각하께서도 크게 축복해주실 것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추모식은 박 전 대통령의 안보관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이명박 대선후보의 통일·안보관을 지적하며 ‘이회창 대안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안보를 바탕으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의 육성이 방송되기도 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박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사규명위의 발표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길전식 민족중흥회장은 추도사에서 “누가 흩어진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평화와 국가 안보에 기여하면서 경제·도덕성 위기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어떻게 하면 나날이 발전하고 국가 중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한번 곰곰이 고민해야할 때”라며 “그럴수록 생각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였던 박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나라 일부 지배층은 박 전 대통령의 위업을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폄훼하고 명예를 훼손하려 온갖 구실을 내세우고 있어 안타깝다”며 “국가기관인 과거사위가 ‘DJ 납치사건’을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결론 내린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무책임한 것으로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 전 사령관은 박 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를 한참 이야기한 뒤 “최근 민족공조, 우리끼리 등의 미사여구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는 작태는 지난 10년의 햇볕정책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훼손하고 폄하하려고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구실을 내세우고 있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