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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대로의 쾌속질주일 것만 같았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선행보에 ‘빨간불’을 예고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 귀국, 청와대 고소 사건에 대한 검찰의 출석 요구 등 ‘외부 변수’에 이어 단합해야할 당내에서도 ‘분열’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19일 이회창 전 총재가 강연 정치를 재개함과 동시에 대선 무소속 출마설이 급부상했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을 종종 제기됐었지만 당 후보가 확정된 지금 이 전 총재의 출마설은 당의 ‘분열’로 비춰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 전 총재는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내 입장은 지금까지와 전혀 변함이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강연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가 지도자나 정권이 정직하지 못하고 또 법치주의에 역행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이라며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경제 강국이란 말을 들어도 거짓과 허장성세가 판을 치고 정직하게 원칙과 룰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그런 사회는 후진국이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이 후보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해석됐다.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이 ‘설’로만 그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 지지층, 나아가 보수진영의 분열은 불가피하다. 이 후보로서는 97년 대선에서 이인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해 이 전 총재의 표를 분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요인을 했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회창 출마설’이 이 전 총재 측의 부인처럼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끝난다고 해도 그 자체가 이 후보가 경선 이후 당을 하나로 묶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과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마음에 드느냐면 노무현”이라는 발언으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 전 총재에게 공개 사과까지 해야 했던 이 후보가 당 대선 후보가 된 후에도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전 총재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수락 여부를 두고 이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상임고문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전 총재가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 들리기도 했다. 또 얼마 전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최돈웅 전 의원 등을 당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려다 ‘차떼기 주역 복귀’라는 비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전 총재가 지난 주 서청원 전 대표를 만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 후보가 경선 당선 인사차 이 전 총재를 예방하려 했지만 당시 이 전 총재는 ‘급체’를 이유로 만남을 ‘거절’했었다. 그런 이 전 총재가 박근혜 전 대표 경선 캠프 상임고문을 맡았던 서 전 대표와 식사 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서 전 대표는 이 후보의 당 운영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서도 최근 마찰음이 들린다. ‘상임고문직 수락’으로 경선 과정에서의 불화를 씻은 듯 했던 박 전 대표가 최근 직접 당 사무처 당직자 인사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다시 ‘친박vs친이’의 대결 전선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는 절대 지지층을 갖고 있으며 한나라당 뿐 아니라 영남․보수층에 영향력도 크다. 이 전 총재 극렬 지지자들은 오는 23일 이 전 총재 사무실 앞에서 ‘이회창 17대 대성후보 출마 추대대회’까지 준비하는 등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으며 박 전 대표 극렬 지지자들 또한 이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 지지세력이지만 이 후보 지지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가 향후 대선가도에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이 후보의 대선행보에 ‘빨간불’이 켜질 수도 있고, ‘파란불’이 켜질 수도 있다. ‘단일 후보’라는 목표 아래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범여권에 비해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세론’ 속에서 분열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 후보에게 ‘당내 화합’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