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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오는 6·7·13·14일에 나눠 실시하려던 8개 시·도의 대통령후보 경선을 14일 하루 한꺼번에 치르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원샷(one shot) 선거’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손학규·이해찬 후보 측이 “그렇게 해야 선거인단 동원이 어려워진다”며 요구한 것을 당 지도부가 받아들였다.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를 불과 10여 일 앞두고 경선의 기본 틀을 ‘지역 순회 선거’에서 ‘원샷 선거’ 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러자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후보 측은 “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지고 있는 후보들 편만 들고 있다”며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대로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정당치고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을 자기 손으로 이렇게 3류 코미디로 만들어버린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신당이 정치적 뿌리로 내세우는 과거 민주당·신민당 시절에도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이 이런 식으로 무원칙하고 뒤죽박죽이지는 않았다.
헌법은 ‘정당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도 ‘정당의 공직후보 추천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주적 절차’는 후보 선출과정이 합법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권 신당의 경선은 처음부터 위헌·위법적이고, 불공정하고,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시종해 왔다.
신당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합법성·공정성의 원칙부터 스스로 허물었다. 국민 이름을 도둑질해 선거인단을 신청하는 행위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침해한 위헌적 처사이며, 업무방해·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신당에서 벌어진 이른바 ‘버스떼기·폰떼기’와 ‘콜센터 동원’은 선거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어느 후보도 ‘나는 안 했다’고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신당은 이미 잡혀 있던 합동유세를 취소한 데 이어 경선 방식까지 바꿔 경선 절차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뒤엎어버렸다. 당 지도부가 후보들에 휘둘려 당원·국민 선거인단과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깬 것이다.
정당 하나 제대로 끌고 갈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겠다고 덤벼서 생긴 ‘블랙 코미디’다. 대한민국의 망신이고, 대한민국 정치사의 오점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불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