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해 5도를 포함하는 인천 옹진군 주민 1만17명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북방한계선) 재설정 논의를 반대하는 건의문에 서명했다. 조윤길 옹진군수는 “주민 입장에서 NLL은 생존선”이라며 “6·25 이후 50년 넘게 북측의 잦은 도발에도 서해 5도를 굳건히 지켜 왔던 주민들이 정부가 NLL 재설정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삼으려는 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군수는 인천 앞바다에 이른바 ‘평화수역’이 선포되거나 NLL에 공동 어로구역이 설정되면 옹진군 주민들의 어장 축소는 물론이고 결국 옹진군 내 상당수 섬들이 분단·고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옹진군 주민들의 이 울분을 4900만 국민 모두의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선 NLL이 1953년 휴전 직후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떼 쓰는 것은 들어줘야 한다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제2조 13항은 전쟁 전 양측이 통제하고 있던 지역을 기준으로 서해 섬들의 관할권을 나누었다. 이는 사실상 북위 38도선과 같다. 당시 유엔군은 압도적 제해권(制海權)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대폭 양보해 38도선 북쪽 섬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현재 NLL 북쪽 북측 바다도 거의 모두 38도선 남쪽에 있다. 결국 유엔군은 북측이 해상 봉쇄를 면할 수 있도록 38도선 이남의 일부 섬까지 북측에 양보했다. 그러나 양측은 해상 경계선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엔군사령관은 남북의 우발적 해상 충돌을 막기 위해 NLL을 선포한 것이다. 현재의 NLL은 우리측이 북한에 양보해 만들어진 선이다.

    이후 20년간 북한은 단 한 번도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1963년에는 북한 간첩선 문제로 열린 군사정전위에서 북측 대표는 “우리 배는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했다. 그러다 북측은 1973년부터 갑자기 NLL에 문제를 제기하며 침범 도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북측은 1984년 수해물자 전달 선박 통행 때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했다. 1991년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 불가침 경계선은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 조항은 북한이 낸 초안대로 된 것이다. 그 후 1993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NLL을 기준으로 한국의 비행정보구역을 변경했을 때도 북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99년과 2002년 NLL을 지키기 위해 우리 해군 장병이 피를 흘린 이후에는 모든 국민이 NLL을 당연한 불가침 경계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서 NLL 남쪽 바다는 우리 국토다. NLL에 공동 어로구역을 설치하는 것도 결국은 NLL 무력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뿐이다.

    NLL이 영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무력 도발을 완전히 포기하고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가 정착된 후에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만 NLL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지금처럼 아무런 군사적 신뢰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NLL만 내준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실질 임기가 이제 석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이 한 번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반(反)국가적 행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