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대통령을 선출할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적 의미로 따져볼 때 역대 대선 모두 한국정치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유산과 경험을 남겨놓았다. 마찬가지로 이번 17대 대선 또한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대선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번 대선이 차기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5년마다 반복되는 단순한 투표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분한 상황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치러진 그 동안의 대선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사이의 도전과 응전을 바탕으로 구도가 형성되어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지루한 논쟁에 종지부를 찌고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한국형 가치와 국정지표를 새로이 창출하는 과정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오랜 기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좌와 우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임을 극복하고 국민과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 세계와의 경쟁에 나설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의 창출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다.

    글로벌 시대에 이념적 굴레를 뛰어넘고 통합된 국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비교적 최근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킨 독일과 프랑스의 전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독일의 여성총리 메르켈과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정파의 틀을 벗어나 선거 당시 반대진영에 섰던 인사들까지도 능력에 따라 고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선보였다. 이들의 지도력은 분열된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데 성공함과 동시에 정치지도자의 능력과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국가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는 10월 15일 5년 만에 개최되는 제17대 전국대표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는 중국공산당은 이번 전대에서 사회주의 색채를 탈피하고 자본주의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는 보다 개혁적인 지도부를 선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강화하고 당내 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한 초보적인 조치들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중국의 경우는 낡은 이념과 정파 대립의 극복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강대국들의 노력과 실천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국가들로부터 고개를 돌려 3개월 남짓 남은 한국의 대선을 바라보자.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기 위한 대선 주자들간의 치열한 정책검증과 논쟁이 실종된 지 오래이다.

    이런 현상을 정당정치가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정쟁만 일삼는 한국정치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이 불러일으킨 파생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아프간 피랍사태 및 신정아 게이트와 같은 사회적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언론의 태도는 대권주자들의 정책과 자질에 대한 보도에 비해 기형적일 정도로 비대칭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사회는 지난 7월과 8월 아프간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들에 대한 논쟁과 이들에 대한 적대감의 표출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서 다시 신정아 게이트라는 폭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가짜 박사 신정아로부터 비롯된 시한폭탄이 메가톤급으로 돌변한 이유는 그 위력과 잠재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알 수 없는 예측불허성에 있다. 또한 신정아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에서 시들해질 무렵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이후 대선까지 남은 2개월 동안 각 정당과 대선주자들은 정책과 비전을 내오는 대신 각종 게이트와 유언비어의 지뢰밭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할 것이다. 결국 21세기 맞춤형 대한민국의 정부의 기틀과 터전을 다지는 일은 사라지고 선거 이후 대한민국에는 상처 입고 권위 잃은 초라한 대통령의 모습만 남게 될 것이다.

    기독교 선교를 목표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피랍된 한국인 인질과 권력형 게이트로 확산되고 있는 신정아 사건은 한국사회의 치부를 들어냄과 동시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의 산적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프간 피랍사태 이후 나타난 우리사회의 반응은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뿐 아니라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종교적 대립 또한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신정아 사건은 두 명의 고졸 대통령을 배출한 대한민국에서 왜 아직도 허위학력에 대한 유혹이 판 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두 사건은 차기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 교육 통일 외교 안보 분야 이외에도 더욱 심각해지는 사회적 현안에 봉착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신정아 사건을 노무현 정권의 게이트로 확산시키는 것에만 급급해하고 있고 여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막판 뒤집기에만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차기 한국의 대통령뿐 아니라 미래의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정치인들은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 붕괴된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났다고 농락하는 희대의 사기꾼 신정아가 아니라 신정아 스캔들에 매몰되어 버린 대선 주자들의 공약과 리더십 검증이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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