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0일 위원 11명이 참석한 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음 달 열릴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부결시켰다. 한 비상임 위원이 “이제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해 회의 안건으로 채택해 검토했지만 “권고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 정책의 균형적 추진보다는 인권 최우선을 내걸어온 기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물론이고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성전환수술 건강보험 적용 등을 정부에 권고해 왔다.

    지금 북한의 인권은 세계에서 최악의 수준이다. 북한 동포는 남이 아니라 헌법상 엄연한 우리 국민이다. 그렇다면 인권위원회는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인권을 논의하도록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이 이 권고를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그다음의 문제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동포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다면 북측은 반발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공식적으로 북한 인권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갖는 의미는 크다. 통일 전 서독의 꾸준한 노력으로 처음에는 크게 반발했던 동독이 나중에는 동독 주민들의 인권과 서독의 경제 지원이 사실상 연계되는 구조를 받아들였다.

    인권위는 바다 건너 수천㎞ 떨어진 동티모르 주민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결의도 하고,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이유로 우리 군의 파견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작년 9월엔 인권단체들이 공개 처형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을 구해달라고 낸 진정을 “북한 주민을 다룰 근거가 없다”며 각하했다.

    대통령부터가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전략적 접근’이란 북한이 싫어하는 인권 문제는 덮어두자는 얘기다. 얼마 전 간판을 내린 집권당 사람들은 북한 인권 운동가들에게 “전쟁하자는 거냐”고 핏대를 세우기까지 했다. 정부는 2003년부터 내리 3년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 또는 불참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APEC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하면 한반도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유화적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공식 연설에서는 “우리는 북한 주민들도 자유를 향유하는 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국가인권위가 북한 인권을 다시 한 번 외면해 버린 오늘 결정을 부끄러워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역사고, 그것이 역사의 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