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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 '이명박씨가 가야 할 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7 대선(大選)’의 최상위(最上位)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해 지난 8월 29일부터 본격적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그날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주제를 어떻게 하나의 힘으로 실체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만만찮은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후보 쪽의 “(너희가) 반성해야…”와, 박근혜 씨 쪽의 “(너희가) 석고대죄해야…”를 어떻게 화합시킬 것인가, 50대 이상의 ‘국가정통성 수호‘(보수우파)와, 20 30 40대의 ‘경제 실용주의’(중도우파)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그리고 ‘산토끼’와 ‘집토끼’를 어떻게 다 잡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진영의 말들이 어딘가 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갈등을 푸는 큰 길은 하나다. 알맹이 없는 용어나, ‘상투적인 개념’을 섣부르게 나열하지 않으면서, 그 두 가지 갈등을 통합할 새로운 담론을 창출하는 것이다. ‘반성’이냐 ‘석고대죄’냐를 따지다가는 공멸하는 길밖에 없고, 어쭙잖게 “좌, 우를 떠나서…”라느니 “색깔을 바꾸자…”느니 하다가는 ‘두 토끼 다 놓치는’ 우(愚)를 범하기 십상이다. 갈등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저 ‘태극기 대연합’과 ‘자유시장주의’의 두 마디만 내걸면 족할 것이다.
‘태극기 대연합’에 대해 ‘김정일과 그 친구들’ 말고는 거기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보수우파’가 토를 달겠는가, ‘중도우파’가 마다하겠는가, ‘중도파’인들 ‘노(No)라고 하겠는가? 우리는 월드컵 때 그것을 보았다. 그 당시의 ‘태극기 물결’과 ‘대~한민국’에는 젊음과 실버의 차이, ‘보수우파’와 ‘중도우파’의 차이, 그리고 ‘우파’와 ‘중도파’의 차이가 없었다. 모두가 ‘태극기 물결’과 ‘대~한민국’ 속에서 뜨거운 한 덩어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감동의 장(場)에서 누가 가령 “보수우파 따로 모이고, 중도우파 따로 모이고, 중도파 따로 모여라”라고 외쳤다면 그게 사람들 귀에 들리기나 했겠는가? 한나라당은 그래서 그런 상투적인 386 식(式) 찢어발기기와 갖다붙이기를 흉내내지 말고, 그 대신 ‘인공기’ 와 ‘위장 한반도기’ 세력을 배제한 모든 다양한 계열들을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담아내 그것을 ‘2007 코리아 판타지’ ‘2007 태극기 랩소디(狂詩曲)’ ‘2007 환희의 송가’로 장엄하게 폭발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르면서도 공통된’ 이런 계파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작업은 따라서 “반성해야…” “석고대죄해야…” 따위가 아닌, 모든 ‘태극기 편’과 ‘대~한민국 편’을 한 덩어리로 열광시킬 수 있는 탁월한 문화주의적 감동과 미학(美學)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는 이런 능력을 엮어내야 한다.
‘자유시장주의’는 이 하나된 감동을 ‘잘 먹고 잘살기’로 전위(轉位)시키는 ‘강력 접착제’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일자리 상실이 지난 10년의 반(反)시장주의, 반(反)기업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기성세대 역시 감히 과거의 권위주의적 성장방식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지 못한다. 지금 세상에 그런 방식이 어떻게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오늘의 시점에서는 노(老) 장(壯) 청(靑)이 굳이 ‘보수우파’ ‘중도우파’ 운운의 내부 분열에 빠질 겨를 없이 ‘태극기 휘날리는 자유시장’이라는 단일 구호 아래 나라와 사회 그리고 내 가족과 나 자신의 행복을 다 함께 도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진영은 그래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태극기 자유대연합’을 향한 첫 발걸음으로 박근혜 진영을 안고 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잘난 척할 것인가를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씨를 삼고초려해서라도 ‘태극기 자유대연합’의 공동 선장으로 초치하기를 대망하고 있다. 그것은 실용을 넘어 상징성을 깨닫는 리더십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