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올해 대선의 최대 이벤트였다.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는 후보들이 같은 당 경선에서 맞붙었으니 국민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경쟁의 양상도 어느 선거 못지않게 치열했다. “같은 당에서 이럴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흥행기간도 길었다. 대선이 있는 올해 정치 캘린더의 70%가 한나라당 경선으로 채워졌다. 한나라당 경선이 8개월 가까이 진행된 반면, 본선은 범여권 후보가 확정되는 10월 15일부터 선거일인 12월 19일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뿐이다.

    2007년 대선 일정은 역대 선거와 비교해 한참 뒤로 미뤄져 있다. 5년 전 16대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것이 4월 28일이었고, 이회창씨는 12일 뒤인 5월 10일 한나라당 후보가 됐다.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가 선출된다면 2002년보다 100일가량 늦은 것이다. 그나마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 중에서는 한나라당 후보 선출이 가장 빠르다. 범여권은 아직 후보 경선을 치를 경기 규칙조차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사정상 올해 본선은 가장 압축된 형태로 치러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역대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를 경기장에 올려놓고 장·단점을 따지면서 이리저리 재볼 수 있는 시간이 짧게는 넉 달, 대개의 경우 6개월 이상 진행됐었다. 그러나 올해는 두 달 안에 이런 일들을 마무리해야 한다. 말 그대로 ‘압축 본선’이다. 본선 기간이 짧아지는 것은 그 자체가 변수가 될 수 있다. 본선에 들어갈 당시의 판세가 그대로 선거일까지 이어지거나 ‘모 아니면 도’ 식의 승부수가 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객관적인 지표는 한나라당 대세론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을 가능케 한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비(非)한나라당 후보에 비해 6:1 가까운 우세를 보이고 있고, 한나라당과 범여권 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5:1 가까이 된다. 이 같은 구도가 두 달 남짓한 본선 기간에 뒤집어질 가능성은 확률상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선거에서 대세론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먼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5년 전 대선에서 대세론을 앞세운 두 명의 후보가 무너졌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무릎을 꿇었고, 본선에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고배를 들었다. 특히 지금의 한나라당 대세론은 범여권이 정당의 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범여권은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되는 20일부터 지지층 결집을 위한 통합의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이날 합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범여권의 ‘통합 이벤트’는 대선 막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후보 선출 이후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을 맞는다. 지금껏 한나라당은 말이 같은 당이지 ‘이명박 당(黨)’, ‘박근혜 당’이 동거해 왔다. 현역 국회의원들부터 일선 지역 책임자들까지 반으로 쪼개져 경쟁해온 것이다. 두 진영 사이엔 선뜻 풀기 힘든 ‘감정의 골’도 깊다. 더욱이 대선으로부터 넉 달 뒤 총선이 예정돼 있어 두 진영은 경선 이후에도 치열한 지분 싸움을 펼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경선 후 분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범여권이 지난 3년 동안 각종 선거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것은 지지층의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런 범여권이 통합을 이뤄내고 한나라당은 거꾸로 내부 분열한다면 한나라당 대세론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경선 못지않게 경선 이후가 주목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