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정부와 여권에서 심각한 얘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2일 한명숙 전 총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핵문제 해결 자체가 회담의 부담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문제를 제기해보되, 얘기가 잘 안 되면 그만둬도 괜찮다는 뜻이다. 김 전 대통령은 곧 노 대통령에게도 회담 훈수를 해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리서치가 남북정상회담 발표 후 조사한 결과 ‘회담이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응답(48.4%)이 ‘그렇지 않다’(41.9%)보다 더 높았다. 그럼에도 69.8%의 응답자가 회담 자체에는 찬성했다. 그 이유는 이번 회담에서 최우선으로 다뤄야 할 의제로 ‘북핵 폐기’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던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다수 국민은 이번 회담에 정략적 의도가 있지만 그래도 북핵 폐기에 도움이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이 빠진다면 남는 것은 ‘정략’밖에 없다는 것이 민심이다. 김 전 대통령의 언급은 이런 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핵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회담 뒤 김 전 대통령은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6년 뒤 북한은 핵실험을 했다.

    바다 휴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서도 충격적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NLL을 남쪽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10일 국회에서 한 여권 의원이 “NLL에 대해 더 적극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하자, 통일부 장관은 “NLL은 기본적으로 영토개념이 아니다”고 화답했다. NLL 남쪽 바다를 꼭 우리 영토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한민국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고 싶지 않은 말이다.

    남과 북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의 불가침 경계선은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양측 간에 정치적·법적으로 논의가 끝난 영토문제를 다시 정상회담 의제로 올린다는 것은 주권을 포기한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12일 이해찬 전 총리는 “NLL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바다 아닌 육지 휴전선 재조정도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만 한다면 “적극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