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 원칙은 무엇인가. 그는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준비하다 어느 날 갑자기 여권으로 옮겨갔다. 이제 대통령 선거에서 흑색선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겨우 몇 달 전 사면받은 설훈 전 의원을 상황실장으로 끌어들였다. 도대체 그가 정치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허용할 수 있는 언행의 기준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과 장관·도지사를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탈당해 여권에 몸을 의탁했지만 시원한 해명을 한번도 한 일이 없다. 솔직히 대통령은 되고 싶은데 다른 두 경쟁 후보에게 너무 큰 차이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런 그가 이제 김대업씨와 함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심을 조작했던 설 전 의원까지 끌어들이다니 체면도 원칙도 모두 던져버린 셈이다.

    설 전 의원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가 최규선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해 치명상을 입혔다. 그는 ‘증인이 있다’ ‘녹음 테이프가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미 선거는 다 끝난 뒤였다. 그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다. 피선거권도 10년간 정지됐다. 하지만 올 초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복권해 버렸다.

    대통령 선거에서 흑색선전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잘못된 선택을 유도한 것은 엄청난 범죄다. 건전한 선거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도 그런 사람은 정치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더구나 그는 국민에게 한번도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적이 없다. 지금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이 특별사면해 준 것부터가 잘못이다.

    선거 결과를 뒤바꿀 결정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바로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흑색선전도 가리지 않겠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을 다시 선거판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