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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19일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 안강민 검증위원장이 오전엔 박근혜 후보에게, 오후엔 이명박 후보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경선에서 실패해도 정권 교체를 위해 상대방과 합심할 것인가.” 두 후보는 당연하다는 듯 “그러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22일 제주 한라체육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합동 유세가 난장판이 됐다. 이·박 두 후보 지지자들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입고 나온 유니폼 색깔이 서로 경선 규정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고성을 주고받았다. 양측은 이 후보측이 미성년자들을 박수부대로 동원했는지를 놓고 험한 말을 주고받다 급기야 상대편 피켓을 빼앗아 던지고 멱살잡이까지 했다. “퇴장시키겠다”는 당 지도부의 으름장도 소용 없었다. 이 후보 연설 때는 박 후보 지지자들이 이 후보의 부동산 의혹을 겨냥해 “땅, 땅, 땅”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보다 못한 당 지도부는 향후 합동 유세 일정을 모두 보류시켰다.
두 후보 진영에서 일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반목과 대립은 더 심각하다. 나경원 당 대변인의 말처럼 ‘노무현 정권에 대해 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한다. ‘이적질’ ‘반역자’ 같은 말은 보통이고 사석에선 “우리가 이기면 다음 총선 공천에서 (상대 진영의) 몇몇 사람은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두 후보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선에서 지면 승리한 사람을 돕겠다”고 말해 왔다. “탈당은 없다”는 다짐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한나라당이 사실상 ‘두나라당’이 돼 버린 것이다.
모든 책임은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에게 있다. 두 사람은 캠프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냥 놔뒀다. 이 후보는 측근들이 박 후보를 ‘공주병’이라고 놀려도, 박 후보는 캠프 의원들이 이 후보를 ‘장돌뱅이’라고 깎아내려도 가만 있었다. 이 후보는 자기 입으로 ‘정권·박캠프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고, 박 후보는 참모들이 정권이 만든 자료를 갖고 이 후보를 공격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팬클럽 회원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서로를 향해 저주와 악담을 퍼붓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조직들이 당국에 의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사법 처리됐거나 사법 처리 직전에 있는데도 그 흔한 사과나 유감 표시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분열의 주범(主犯)이 바로 이·박 후보 두 사람인 셈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은 결코 한나라당 집안일로 끝날 수가 없는 문제다. 우선 누가 대선 후보가 된다 해도 이처럼 당이 갈갈이 찢겨서는 집권은 요원하다. 또 설사 대권을 잡는다 한들 나라꼴은 제대로 되겠는가.
국민들이 다음 대통령에게 절실히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통합과 화합이다. 지난 4년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강남 사람과 강북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미국과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시도 때도 없이 편 가르고 싸움 붙여 온 이 정권에 신물 난 탓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도 이런 국민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입만 열면 ‘화합’ ‘통합’을 강조해 왔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 자기 집 내부의 다툼과 갈등을 방관하고 부추기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모순도 이런 자기 모순이 없다. 두 후보의 지지도가 추락과 정체의 틀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