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박관용)가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 일정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경선이 급격히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23일 “명백한 사당화 기도”라고 분개했다. 선관위의 합동연설회 전면 중단 결정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선관위의 합동연설회 연기 결정 소식을 전해들은 박 전 대표 캠프에는 “말이 되느냐” “이번 경선은 ‘국민이 오케이할 때까지’가 아니고 ‘이명박이 오케이할 때까지’다”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전당대회(경선일) 일정도 연기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전 대표 측은 합동연설회 일정이 뒤로 미뤄지면 자연스럽게 TV토론회, 합동연설회 횟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TV토론회 축소를 주장해 왔던 이 전 시장 측과 요구와 맞아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공당의 신뢰를 이렇게 떨어뜨리고 국민 앞에 서는 것을 계속 회피하면서 어떻게 이 당을 갖고 집권하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이냐”고 개탄했다. 홍 위원장은 이 전 시장을 겨냥, “60, 70년대 토목공사 수주가 추잡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공당의 경선 절차를 이렇게 휘저어 놓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말까지 말했다.

    “옛말에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고 했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한 홍 위원장은 “박 전 대표가 천신만고 끝에 재건해 놓은 당이 이런 한심한 결정을 연속적으로 하고 있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이런 일이 어느 캠프 주장 때문에 시작되고 결론이 났는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합동연설회)에서 약간 분란이 있었지만 전쟁이 일어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을 침소봉대해서 일정을 중단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며 “명백한 사당화 기도”라고 성토했다.

    그는 “민주정당에서 합의된 절차를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당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런 작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합의된 원칙에 이의 제기하고 번복한 것에 대해 지금이라도 이 전 시장이 나서서 사과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경환 종합상황실장은 “도대체 합동연설회를 과열시킨 것이 누구냐. (대선후보들끼리) 의논해서 안될 일이 뭐가 있느냐”며 “재발방지책은 오늘이라도 후보나 관계자들을 모아서 논의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합동연설회 전면중단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은 합동연설회 전면중단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위해 이날 오후 7시 30분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 참선한 의원들은 모든 경선 일정 자체를 연기해야 한다는 등의 격한 반응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갑 의원은 "조그마한 돌발상황에 원칙도 합의도 모두 흔들리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라며 "연설회를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면 전대를 포함한 전체 일정을 다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혜훈 대변인은 전했다.

    허태열 의원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바꾸겠다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자세다. 당이 이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형평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한심한 처사"라며 "박 전 대표가 상승세를 타다 보니 이것을 끊기 위한 얄팍한 전략이다. 과거 건설사들이 입찰할 때 쓰는 야비한 비겁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춘 의원도 "불리하면 안하겠다는 자세는 원만한 경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가장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법인 토론이나 연설을 거부하면, 부정하고 음습한 방법으로 하는 것 밖에 없다. 매표나 유권자 직접 접촉밖에 남지 않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국민에게 버림받을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광주를 방문한 박 전 대표는 캠프로부터 여러 차례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다음날 예정된 광주 일정을 취소했으며 24일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