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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가 쓴 시론 <국정원은 '심부름 센터'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정보원이 야당의 당내 경선 후보자 친·인척 부동산 정보를 열람했음을 시인했다. 정부조직법은 대통령 소속하에 국정원을 둔다고 하였다. 이런 기관이 헌법이 정당 제도로서 보호하는 야당의 자유를 근간에서부터 침해한 것이다. 과연 현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선량한 관리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어떤 국가기관도 개인의 ‘뒷조사’를 하는 순간 국민의 돈인 세금으로 운영될 수 없는 사설탐정기관이나 심부름센터로 변한다. 국가안보의 첨병으로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중차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이라 해도 그 역시 국가기관이기에 지켜야 하는 헌법원칙과 법·제도를 무시할 수 없다. 권력분립과 행정기관법정주의 및 정부조직법과 국가정보원법, 그리고 전자정부법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등이 그것이다.
국정원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패척결 TF’ 팀을 운영해 왔다면서, 부패 예방 정보 활동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 영역이고 따라서 주민등록이나 부동산 정보 등의 열람은 필요한 범위에서의 관련 정보 수집의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한다. 틀린 말이다.
정부조직법 제16조는 국정원의 권한과 직무 범위를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의 담당에 있다 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법 제10조 역시 국가정보원장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정보원법 제3조 제1항 제1호는 그 관련되는 정보의 범위인 국내 보안 정보를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으로 ‘한정하여’ 열거하고 있다. 즉 부패방지와 관련된 자료의 수집·관리 및 분석의 업무는 국정원의 고유업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 소속하에 두는 ‘국가청렴위원회’(부패방지법 제10조, 제12조)의 일이며 그 사후 적발이나 수사는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검찰청법 제4조)와 경찰(경찰법 제3조)의 본연의 업무다.
국정원처럼 이를 ‘예시적’ 열거 조항으로 보아 원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 제96조 행정 각부의 설치·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는 행정조직법정주의와 권력분립주의의 헌법원칙에 반한다. 정식의 정부조직을 잠탈하여 국정원을 무소불위의 빅브라더로 만드는 위헌적 법 해석이 되는 것이다. 부패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에 대해서 헌법 제97조는 이를 대통령 소속하에 두는 감사원의 직무로 한다.
국정원은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지만(국정원법 제3조 제1항 제4호) 문제되고 있는 대선 출마 후보자나 그 친·인척은 국정원 직원이 아니니, 국정원은 이들 정보의 수집 근거가 되는 법을 명확히 제시하질 못하고 있는 셈이다. 차기 대선 후보자에 대한 정치사찰을 했다는 말이다. 국가정보원법이 금지하고 처벌하는 정치관여죄 및 직권남용죄(제9조, 제11조, 제18조, 제19조)에 의율(擬律·법률을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함)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TF에서 수집한 부패 사안에 대한 비리 첩보를 검찰과 경찰 등 관계기관에 제공해 처리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반보를 양보해서 이번 사안에서 그런 권한 행사가 가능하다 해도, 그 역시 전자정부법(제12조, 제21조~제22조의3)의 행정정보공동이용의 제도와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제6조)의 사전통보 제도 등에 의거하여 주민등록 정보 내지 부동산 정보의 접근·열람권을 가지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동의 내지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행자부는 국정원에 행자부 전산망 접속·열람권을 준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 소속의 국가정보원이 이렇듯 방자하게 권력을 행사하여 대통령 선거라는 신성한 헌법 의식을 흐리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 및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의 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하여 ‘자연인의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헌법 무시를 일삼은 노무현 대통령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