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군사정권의 4.13호헌조치에 맞서 직선제와 민주헌법쟁취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됐던 6월 항쟁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해방 이후 최대규모의 인파가 참여했던 시위와 집회는 결국 군사정부로 하여금 6.29선언이라는 정치사회적 유화조치를 발표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한국정치에서 정당정치에 입각한 자유로운 대통령선거와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가능해졌으며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현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6월 항쟁의 결과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확립되었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부분은 6월 항쟁의 성과물이 어느 특정 정치세력의 일방적인 공세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군사정권과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의 온건파 사이에서 발생한 타협과 협상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6월 항쟁 도중 양 진영의 온건파가 힘을 잃고 군사정부내의 강경파와 시위를 주도하던 급진세력간의 충돌이 발생했다면 오늘 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은 그만큼 뒤로 미루어지거나 요원한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대중동원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집권세력 내 강경파의 득세로 인해 민주화가 좌절된 남미와 남유럽의 많은 사례가 위와 같은 논리를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6월 항쟁을 해석하는데 있어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첫째,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 특히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폭넓은 지지가 6월 항쟁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들 중산층의 압력을 목격한 군사정권 내 온건파가 시위지도부와 협상을 통해 경색된 정국의 정치적 출로를 모색할 필요를 느꼈다는 점이다. 결국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특정한 운동세력이 아니었으며 민주화의 진전 또한 타협과 협상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지배체제에서 민주주의로 이행 과정을 논의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관관계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볼 때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주도하에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들은 있으나 산업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는 비록 민주화에 성공했다 할지라도 산업화를 통해 광범위한 시민계층을 형성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실패한다면 민주화 이후에도 언제든지 권위주의 체제로의 복귀가 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 또한 민주화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경험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결국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민주화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집권세력과 저항세력 사이의 충돌과정에서 타협과 협상을 도출해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치세력의 존재여부와 이후 권위주의로의 복귀를 저지할만한 경제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졌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로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6월 항쟁의 성공과 이후 민주주의로의 순항이 1960년대부터 추진된 산업화의 결과물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6월 항쟁의 결과 자유주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팽창을 목도하고 있는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정치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화의 결과로 권력획득에 성공한 집권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으로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말이 좋아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평가이지 이는 이미 20년 전에 종결된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의 결전구도를 부활시켜 위기에 빠진 권력을 재창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계산된 행위일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통과 성장의 과실은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가치는 산업화를 통해 배출된 중산층의 존재와 교육의 확산,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었던 경제발전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꽃 피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한국사회가 이룩한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독점하며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려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이는 또 다른 권위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려는 불행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현 집권세력에게 필요한 덕목은 반목과 분열이 아닌 통합과 상생의 리더십이다. 그것만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서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며 상대방을 질타하는 혼란스런 정국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며 무한경쟁에 내몰린 한국사회의 방향타를 제시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