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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서로 얼굴을 대하기가 불편하다.
최근 봇물처럼 터지는 의혹에 이 전 시장은 "나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려고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범여권은 물론 박 전 대표 진영까지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후보들이 할 일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해명하면 되는 것이다. 판단은 국민이 한다"고 받아쳤다. 양 캠프간 신경전도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이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이명박 두 후보가 만났다. 두 후보 모두 14일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 시도민대회에 참석했고 1시간 가량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두 후보는 이날 '검증공방'으로 불편한 최근의 상황을 고스란히 연출했다. 두 후보 모두 애써 불편한 기색을 감추려 했지만 이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상대방에 대한 앙금이 여과없이 노출됐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도 두 후보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테이블에 앉아있는 박 전 대표에게 이 전 시장이 "일찍 오셨네요"라며 악수를 권하자 박 전 대표는 "어서오세요"라고 답했고 이후 두 후보는 15분 여동안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두 후보 사이에는 강재섭 대표가 자리했고 두 후보 모두 번갈아 가며 강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행사가 예정보다 늦게 시작돼 두 후보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15분여동안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참석자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 전 시장도 박 전 대표의 반대편에서 참석자들을 만났다. 10여분 동안 각자 반대편에서 참석자들을 만난 뒤 두 후보는 다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는 다시 이어졌다. 간간히 서로를 응시했지만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30여분 쯤 지나자 두 후보는 아예 등을 지고 앉았다. 한참을 지나 두 후보는 다시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사회자의 내빈 소개 도중 이규택 의원이 호명됐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지원하고 있다. 이때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에게 이 의원의 참석이 의아하다는 듯 "(이 의원의)지역이…"라고 물었다. 박 전 대표는 "경기 여주에요…"라고 답했고 이 전 시장이 다시 "경기 여주인데 왔네. 여기는 왜 왔지?"라고 하자 박 전 대표는 본인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두 후보의 대화는 다시 끊겼고 어색한 분위기도 재연됐다. 한시간 가량 지나자 홍준표 의원이 뒤늦게 참석했고 홍 의원이 같은 테이블에 앉자 두 후보 사이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막판 후보 경선에 참여한 뒤 두 후보를 향해 거침없이 공세를 퍼붓고 있는 홍 의원의 참석이 두 후보에게는 크게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홍 의원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 대화를 나누며 상대적으로 친분이 더 있음을 내비쳤고 박 전 대표는 이런 이 전 시장과 홍 의원의 대화가 불편한 듯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참동안 귓속말을 주고받자 박 전 대표는 간간히 두 사람을 응시했고 대화 내용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시장이 지지율은 앞서고 있지만 축사는 박 전 대표가 먼저 했다. 사회자가 박 전 대표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기자 이 전 시장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이때 옆에 있던 홍 의원이 웃으며 이 전 시장의 어깨를 툭쳤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의 축사 내내 테이블 아래만 쳐다봤다. 박 전 대표가 축사를 마치고 내려오자 홍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살짝 가도 돼요"라며 먼저 행사장을 빠져나갈 것을 권유했고 이에 이 전 시장도 "눈감고 있을테니 가요"라고 거들었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과 홍 의원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박 전 대표가 행사장을 빠져나간 뒤 이 전 시장이 축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고 이 때부터 이 전 시장은 최근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표출했다. 약 5분 축사를 한 박 전 대표와 달리 이 전 시장은 10여분간 마이크를 잡았고 자신을 겨냥한 잇단 의혹 제기에 격정적인 발언을 쏟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내가 사과할 게 있습니까"라고 물어 참석자들로 하여금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유도하기도 했고 "내가 분명히 승리하겠다"며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도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