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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이번에 정권이 바뀔까 봐 김 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답답하고” “초조한” 상황이다. 선거는 구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 구도에 대한 두 사람 생각이 크게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은 서부벨트(호남+충청)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노 대통령은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얘기가 맞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일 원광대 특강에서 ‘호남+충청’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7년 대선을 예로 들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로 이회창씨를 39만표 이긴 그 선거다. 노 대통령은 “97년에 호남 충청이 손잡아 이겼다는데 수판 놔 보면, 간단한 전자계산기로 두드려 보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김종필씨와 손잡아 충청권에서 이회창씨에 이긴 표는 40만표였다. 그런데 이인제씨가 영남권에서 가져 간 표는 그 두 배가 넘는 100만표에 육박했다. 이인제씨가 없었다면 영남에서만 이회창과 김대중의 표차는 최소한 40만표는 더 났을 것이다. 그러니 이인제씨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DJP가 ‘죽었다 깨나도’ 못 이겼다는 노 대통령 말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 없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그 선거도 노 대통령이 열세였던 충청권에서 행정수도 공약으로 25만표를 이긴 것이 결정적 승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산 출신인 노 대통령이 영남권에서 얻은 표는 175만표에 달했다. 노 대통령의 영남권 득표율은 25.4%로 그 전(前) 선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 13.2%의 두 배에 달했다. 노 대통령의 영남권 득표율이 김 전 대통령과 비슷했다면 충청권 행정수도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라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말하려는 것은 간단하다. 그는 특강에서 “이인제씨가 또 어디 있습니까, 지금”이라고 물었다. 이번에는 이인제가 없다는 것, 그래서 호남+충청 구도를 만들어 봐도 소용없다는 것이 노 대통령 결론이다.
노 대통령 말대로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영남표를 분산시킬 수 있는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바깥에 영남표를 의미 있게 가져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지난 11일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후보로 공식 등록했다. 이제 두 사람 중 한 명밖에 출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제2의 이인제도, 제2의 노무현도 등장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은 끝난 것인가. 노 대통령은 일단 선거 구도는 어려워졌다고 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구도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명박의 문제, 박근혜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선거 구도는 가급적 이슈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다. 노 대통령은 주로 이·박 두 사람의 공약을 공격하고, 여권은 두 사람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는 두 사람에 대한 지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두 사람의 공약과 도덕성, 개인적 이력에 약점이 있다고 나름대로는 확신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수도권에서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꾸 호남+충청 하라니까 노 대통령 속이 터지는 모양이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생각이 다른 것은 대선도 대선이지만 2008년 국회의원 총선을 보는 입장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대선이 지역구도로 가면 갈수록, 호남을 바탕으로 한 김 전 대통령은 넉 달 후 총선에서 자기 세력을 확보할 기회가 더 커지지만, 영남 출신인 노 대통령은 그 반대가 된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집토끼라도 지키자는 것이고, 노 대통령은 싫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권 내 분파들이 “대선은 포기하고 총선 생각만 한다”고 서로 손가락질 하는 근본 갈림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