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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MB(이명박 전 서울시장)는 본선에서 절대 안 된다. 그가 될 것 같으면, 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그쪽을 돕지 왜 불리한 박근혜 쪽에 서겠는가.”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이 한 말이다. 그는 MB와 자신의 개인적 관계와 MB가 도움을 간곡히 청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비보도를 전제로)MB의 재산 8000억설, 재미교포 엘리카 김과 BBK 얘기, 출생과 관련한 의문 등을 예로 들며 그러한 것들이 본선에 가면 다 드러날 텐데 MB가 그걸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여권에선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MB 진영 인사의 말이다. 여권이 가지고 있는 박근혜 X파일이면 게임은 끝난다는 것. 그러면서 그의 유신시절 정치적 행적, 정치 입문까지 기간의 사생활, 정수장학회를 비롯한 재산관계 등을 맛 뵈기 식으로 거론했다. MB측은 또 저쪽의 네거티브(흠집내기) 내용들을 알고 있다며 모두 허위인 그것들을 폭로하는 건 저쪽이 제 무덤을 파는 격으로 실천에 옮겨지길 바란다는 투였다.
귓속말로 오가던 두 사람 관련 각종 의혹들이 예선=본선으로 인식되는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공공연히 얘기된다. 선제공격을 한 건 역시 박 전 대표 쪽이다. 세가 불리하기 때문에 역전을 위해 비장의 카드를 뽑아든 것일 수도 있고, MB보다 의혹들이 적기 때문에 이를 승부수로 삼자는 전략일 수도 있겠다. MB 쪽은 공격을 자제한 채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아직까지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는 여유일 수도 있고, 네거티브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계산일 수도 있겠다.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갈수록 더 험해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 쪽에선 아직 초반인데 카드를 모두 소진하진 않았을 것이며, 더 고단위 의혹들을 비장하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또 MB 쪽에선 판세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지금의 자세를 유지하겠지만, 불리해진다 싶으면 감춰둔 박 전 대표 관련 의혹들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각 후보 진영이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폭로 내지 의혹 제기가 극약처방이라는 사실이다. 곧 자신 아니면 상대방의 생사를 가름하게 된다는 얘기다. 폭로한 내용이나 제기한 의혹이 중대하고 또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제기한 쪽은 칼의 자루를 쥐고 상대방은 날을 잡게 된다. 그러나 허위로 판명되면 자살행위임을 각오해야 한다. 그 입증 책임은 물론 제기한 쪽에 있으며 ‘아니면 말고’ 식은 부메랑이 돼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폭로 등을 당한 쪽에서도 그 내용이 사실인데 이를 부인하다간 폭로된 내용보다 거짓말을 한 점으로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폭로나 의혹이 사실이라면 솔직히 시인하고 이해와 관용을 구하는 게 현명하다.
또 유권자들은 폭로 등에 휘둘리거나 말초적 흥미에만 빠져선 안 된다. 눈 똑바로 뜨고 이를 검증하여 엄중히 심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난번 대선에서 여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유권자들이 충분히 학습을 받았고, 그래서 폭로에 대해선 일단 부정적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마저 엿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명명백백한 사실이거나, 극약처방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판사판의 지경이거나, 갈라설 각오가 아니라면 폭로나 의혹 제기 전술을 삼가야 할 까닭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일찍이 당랑재후(螳螂在後·참새가 뒤에서 노리는 것도 모르고 사마귀가 매미 잡는 데만 정신을 팔고 있다)라는 고사성어로 두 사람의 싸움에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당장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경고는 한가한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