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 보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나온 발언들을 기사화 하지 않는 것은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약속’이며 ‘직업윤리’로 통한다. 기자는 취재원이 비보도를 요청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이 관례다.
최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의 ‘공천 배제’ 발언으로 촉발된 박근혜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간 감정싸움이 ‘이명박 X-파일’ 공방전으로 확전되고 있다. 양 진영의 ‘싸움’은 박 전 대표 측 곽성문 의원의 ‘비보도 전제 발언’이 공개되면서 격화됐다. 언론계의 직업윤리가 무너지면서 논란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명박 X-파일’을 거론한 문제의 발언은 지난 4월 10일 박 전 대표 측 의원들과 박 전 대표를 담당하고 있는 일명 ‘마크맨’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나왔다. 언론과의 스킨십을 넓히고자 마련된 이날 자리에는 곽 의원 외에도 박 전 대표 측 김무성 김재원 이혜훈 허태열 의원과 인터넷 기자 20여명이 참석했다.
정치권에서 ‘먹고 사는’ 의원들과 정치부 기자들의 대화 주제는 당연히 한나라당 ‘빅2’에 집중됐으며 이 자리에서 곽 의원은 비보도를 전제로 정치권에 떠도는 이 전 시장을 둘러싼 ‘소문’들을 전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전 시장 친․인척 명의 신탁 재산 8000억원, 여당 의원들 이명박 X-파일 소재 등의 발언이 나왔다.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던 곽 의원의 발언은 두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뜬금없이’ 공개됐다. 이날 동석했던 ‘뉴시스’는 4일 ‘재산 문제 등 이명박 X파일 파문, 곽성문 발언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비보도 약속을 깨고 곽 의원의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 더욱이 이 전 시장측이 당시 저녁식사자리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을 더욱 확산되고 있다. 녹취록 존재 여부가 사실이라면 기자들과 의원들만 있었던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 녹음돼 이 전 시장 측에 전달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캠프 대변인 박형준 의원은 5일 논평에서 “곽 의원의 발언을 보면 단순히 시중에 떠다니는 말을 옮긴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상당히 치밀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녹취록’을 보면 곽 의원은 팩트를 갖고 얘기 한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다. 곽 의원은 주장의 근거를 즉각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녹취록의 존재를 밝힌 것이다.
곽 의원의 발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곳이 뉴시스 뿐이었기에 박 의원의 논평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또한 곽 의원과 이혜훈 의원을 ‘공천배제’ 대상을 지목한 정두언 의원의 기자회견(3일) 직후 뉴시스 기사(4일)가 나갔으며 연이어 이 전 시장 캠프 대변인 논평에서 ‘녹취록’이 거론된 것을 두고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언론사가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측의 ‘싸움’에 끼어든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저녁식사자리에 있었던 뉴시스 기자는 “녹음을 하지는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내부 정보보고용으로 올려놓았었던 것 뿐이다”며 “정 의원의 기자회견으로 ‘오프더레코드’가 깨졌다고 생각하고 기사화했다”고 녹음 사실을 부인했다.
보통 취재원들은 기사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속에 있는 말을 좀 더 허심탄회하게 꺼내놓게 되고 기자로서 ‘버리기 아까운 발언’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였다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언론계의 상식이었다. 비보도 요청에 신중하게 답하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계의 직업윤리까지 무시하면서 오프더레코드를 과감하게 깬 보도는 과열되고 있는 ‘빅2’의 감정싸움에 기름만 부은데 그치지 않고 언론이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기자가 취재원 몰래 녹음까지 했다면 이는 범죄행위와 다름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