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양보는 많이 가진 자가 한다 싸움을 말리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부부싸움이나 집안싸움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3자는 가족 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얽힘을 알지 못하고 앙금의 두께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싸움은 당사자가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원에 고소하기 전에는 국가도 잘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두 예비후보 간의 갈등도 일종의 집안싸움이다. 경선게임 규칙의 해석 문제를 놓고 '내가 옳다'며 한 치 물러섬이 없다. 지지고 볶든 말든 자기네 문제라며 방치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진흙탕 싸움'이라며 양비론이나 펴는 것도 집안싸움에 얽혀들기 싫어서다. 자칫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다가는 "당신이 뭔데 집안싸움에 끼어드느냐"는 멱살잡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그러나 집안싸움도 오래 끌거나 너무 시끄러우면 이웃도 마냥 모른 척하기 어렵다. 더구나 민의를 대변해야 할 정당이 허구한 날 대선주자들의 싸움에 휘말려 허둥대고 있으니 제3자가 나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 전 시장에게 있다. 그가 현재로서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본래 힘 있는 자, 가진 자가 베푸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선 지 오래다. 아슬아슬한 1위가 아니라 2위인 박 전 대표보다 한참 앞서 있다. 당사자로서는 몇백 표로 승부가 갈리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하면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법이다. "왜 우리만 양보해야 하느냐"며 억울해 할 것 없다. 만약 박 전 대표가 1위, 이 전 시장이 2위였다면 이번엔 박 전 대표에게 양보하라고 했을 것이기에. 우리 국민은 강자에겐 아량을 요구한다. 약자에겐 쉽게 동정을 보낸다. 손해볼 줄 아는 데서 리더십이 생기고, 양보할 줄 아는 데서 감동이 생긴다.

    캠프 내에서 "이 기회에 박근혜를 치고 가자"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박 전 대표 측의 '검증공세'에 시달리면서 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다는 얘기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되짚어볼 여지도 있다. 과연 이 전 시장이 뒤쫓아가는 입장이었다면 뒷짐지고 점잖게 있었을까. 본래 집안싸움이 더 무섭다고 했다. 재산싸움 끝에 원수처럼 지내는 형제도 적지 않다. 범여권에서도 서로 '살모사 정치'니 '구태정치'니 하면서 막말을 해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나중에 후보를 단일화하자고 하는 판인데, 박 전 대표가 당에 남아 있어 봤자 대선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그건 오만이다. "경선에서 져도 당에 남아 있기만 하면 고맙다"는 심정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돌리는 뺄셈정치의 폐해를 지겹게 보지 않았던가.

    이러다간 관중이 게임 내용에 실망하고 흥미를 잃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물론 박 전 대표가 경선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그러나 만의 하나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국민은 한나라당 경선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저버렸다"는 멍에도 이 전 시장이 져야 한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는 나서지 않고 수시로 이 전 시장의 원칙 없음을 지적하면서 흔들어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까지 210일간 범여권의 집중포화도 홀로 맞아야 한다.

    "전국위로 끌고가면 분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남경필 의원), "박 전 대표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배일도 의원), "이 전 시장쪽 주장이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홍준표 의원). 이들은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이 아니다. 치고 나갈 것은 박 전 대표가 아니라 경선규칙 나부랭이다. 향해야 할 곳은 전국위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다. 국민을 바라보고 큰 길로 가야 한다. 이건 누구나 아는 해법이다. "약자에겐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 전 시장이 10일 예비후보 등록 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