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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에 이 신문 편집국 조용 부국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권투선수로 치면 전형적인 인파이터 형이다. ‘경선룰 원칙 고수’라는 단 한 가지 명분을 내걸고 상대방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경선전의 쟁점을 ‘이미 합의된 규칙을 지키느냐, 깨느냐’로 단순화해 화력을 집중하는 이같은 전술은 일단 주효했다. 전투의 양상만으로 보면 여론조사상 압도적 선두인 이 전 시장에게 조금도 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목소리는 박 전 대표측이 더 높다. 물론 이 전 시장측이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쨌든 박 전 대표측이 경선전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 시장보다 박 전 대표의 승산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표의 골수 지지자들을 빼고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의 2배에 가까운 이 전 시장의 여론조사 지지율, 그 격차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런 추세가 1년여나 이어지면서 ‘이명박 대세론’의 저변이 계속 확산되는 밴드왜건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당심에서 조금 앞선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시간이 갈수록 당심은 민심에 수렴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표는 지지율의 늪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경선룰에 집착하는 것은 혼자서 헤어나려고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다.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가게 된다. 박 전 대표가 늪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국민이 던져주는 밧줄을 잡는 것뿐이다. 그럼 민심의 밧줄은 어떻게 잡는가. 문화일보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대선주자 정기 여론조사 결과들을 돌이켜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2004년 12월7일 첫 조사때 19.2%의 지지율로 9.9%의 이 전 시장을 크게 앞섰다. 4·15 총선 당시 천막당사로 상징되던 ‘난파선 정당’을 번듯한 제1야당으로 기사회생시킨 그의 ‘잔다르크 리더십’이 그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율 폭발’계기는 2005년 10월 개통한 청계천이다. 그해 7월26일 조사때 15.1% 대 12.9%로 처음 박 전 대표를 추월한 이래 딱 한번만 빼고는 상대적 우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 딱 한번이란 박 전 대표가 테러를 당하면서까지 혼신의 지원유세를 펼쳐 지방선거 압승을 이끈 직후인 지난해 6월13일 조사를 말한다. (박 전대표 23.7% 대 이 전 시장 20.6%)
이처럼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지지율의 배경이 서로 판이하다. 이 전 시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추진력과 경제난 타개능력의 이미지가, 박 전 대표는 국가와 당을 위한 사심없는 헌신과 자기희생의 이미지가 각각 인기의 비결이다. 똑같이 강력한 권력의지를 과시해도 이 전 시장의 이미지엔 어울리지만 박 전 대표의 이미지엔 어색하게 비치는 게 이 때문이다.
경선룰 공방이 길어지면 양측 모두 타격을 받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박 전 대표가 훨씬 더 손해다. 박 전 대표로선 현재의 불리한 지지율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면 경선까지 남은 석달간 획기적 국면전환책을 내놓고 당심보다 민심의 흐름을 자신쪽으로 유리하게 돌려야 한다. 지금처럼 당내 이전투구에 발목이 잡히면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실기하게 된다. 벼랑 끝에서 경선룰 공방을 극적으로 매듭짓는 게 적게 잃고 많이 얻는 길이 아닐까. 이는 당을 위해 또 한번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 뒤 지지율 회복의 막판 승부수를 던지는 정면돌파 전략이다.
‘(당심을) 지키는 정치’는 결코 도전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사즉생(死卽生)이야말로 박 전대표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경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