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에 이 신문 정치부 하태원 기자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회담 진행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자는 북한과 감추려는 남한.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선 남북이 평소와는 상반된 태도로 회담을 벌이고 있다.

    경추위의 1차 전체회의는 당초 19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실제론 오후 5시 40분에야 시작됐다. 북한이 전례에 없이 양측 기조발언문을 미리 교환하자고 요구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져 그렇게 됐다는 게 남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북측은 식량차관제공합의서와 공동보도문 초안도 미리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언론이 회담 파행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자 정부는 이를 뒤늦게 실토했다.

    북측은 남측 여론이 6자회담 ‘2·13합의’의 이행 없이는 대북 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쪽으로 흐르자 남측이 준비해 온 차관제공합의서와 공동보도문 초안을 사전에 확인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쌀 지원 계획을 분명히 확인하고 요식적인 회담을 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북측은 더 나아가 “전체회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자”며 공세를 취했다. 지난달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쌀 지원에 관해 ‘이면합의’한 내용을 전부 ‘폭로’하겠다는 으름장인 듯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당시 평양에서 돌아오자마자 “북한이 제시해 이런 정도가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식량 40만 t이다. 양측이 합의한 내용이다”고 무심코 말했다가 쌀 지원에 이면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남측은 북측 제안을 “전례가 없고 생산적이지도 않다”며 거부했다. 회담 상황을 보고받은 통일부 주변에선 “북측이 좀 살살해야지. 서로 알 만한 처지에 왜 그래” 하는 반응이 나왔다.

    남측은 오후 4시 40분경 양측 수석대표 접촉을 제안했고,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북측은 자신들의 주장을 모두 철회했다. 그러고 전체회의에 응했다.

    20일 회담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한 회담 관계자는 “쌀 문제는 장관급회담에서 원론적인 합의를 이뤘다. 그것과 연계해 회담을 파행으로 끌고 간다든지 그런 것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쌀 차관에 관한 공동보도문은 21일 공개된다. 그러나 남북의 막후 흥정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남북대화의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남북 간에는 ‘말 못할 사정’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