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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23일부터 이틀째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잠적 아닌 잠적’에 들어갔다.
본인 스스로 ‘죽음의 길’이라고 할 정도로 험난한 여정이 예고된 선택이었기에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탈상 선언 이후 차별화를 위한 ‘상징성’ 있는 행보를 보여 왔다. 20일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자마자 4·19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21일 첫 공식일정은 1970년대 노동운동 당시 머물렀던 구로공단으로 잡았다. 이어 22일에는 운동권 선배인 시인 김지하씨와 만나 문화계 및 재야 인사 껴안기에 나섰다. 김씨는 소설가 황석영씨와 함께 손 전 지사의 탈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행보가 ‘민주화 세력’과 맞닿아 있다.
‘제3의 길’을 선택한 손 전 지사는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며 ‘친정’인 한나라당은 물론, 어느 정도 ‘뒷심’이 될 것으로 여겼던 범여권에서조차 쏟아지는 비판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시베리아’로 나온 지 5일 만에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손 전 지사측은 24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어제 오늘 공식적인 일정은 잡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사람들을 계속 접촉하고 있다”며 “오늘도 오전에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문화계 인사를 중심으로 정치권 밖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두루 접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주말 정도까지 비공식 접촉을 이어간 뒤 조만간 공식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중대 결심을 하기 전 3일간 산사로 잠적했던 손 전 지사가 새로운 길을 향한 발걸음을 떼자마자 ‘잠행’에 들어간 것은 정치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소식을 접한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비(非)노무현 비(非)한나라당’을 두고 범여권과도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활동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며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했다. 그만큼 손 전 지사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상황’은 현실이 돼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손 전 지사를 향해 ‘보따리장수’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이를 두고 범여권 진영은 물론 손 전 지사가 결집을 노리는 ‘민주화 세력’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손 전 지사는 노 대통령을 향해 “내가 말한 무능한 진보의 대표”라고 반격했지만 노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여권 인사 등과의 교감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자칫 자신이 비판한 ‘무능한 진보세력’과 연계되기도 한다. 또 한미FTA협정 등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정리한 언론보도 등에서도 손 전 지사는 ‘옛 동지’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옆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면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쏟아지는 ‘제2의 이인제’라는 비난과 ‘타깃’으로 삼은 중도개혁세력을 자신이 ‘무능한 진보’라고 했던 범여권과 나눠가져야 하는 이중고의 상황이 손 전 지사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민심으로 여의도를 포위하겠다며 ‘100일민심대장정’을 떠나기도 했던 손 전 지사가 사회 각계각층의 결집을 통해 정치권을 포위할 수 있을지 '돈도 조직도 없는' 그의 정치실험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