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0일 사설 '손학규 탈당이 정치퇴행일 수밖에 없는 세 측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19일 한나라당 탈당에 대한 평가는 그의 정치행위가 한국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킬 결단이냐, 아니면 다시 수십년을 후퇴시킬 퇴행적인 구태(舊態)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세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풍토 전반을 결정적으로 퇴보시킬 개연성이 짙다고 판단한다.
    첫째, 그의 탈당은 ‘정치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3년 당시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만든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경기도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전력 때문에 그의 이같은 독설이 동반하는 윤리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의 인적 기반과 정체성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 3선,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를 거쳐 대선주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된 14년간의 ‘승승장구’는 한나라당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키워온 정당을 그렇게 매도하는 것은 자기부정이고 자기모순이다.

    둘째, ‘정치 신의의 문제’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수없이 탈당 불가론을 펴오지 않았는가. “내가 한나라당을 나가는 일은 없다.”(1월17일) “나는 한나라당을 꿋꿋이 지켜온 주인이며 기둥이다.”(1월31일) “내가 한나라당 수문장으로 대문을 지키고 있는 한 누구도 우리를 수구 보수, 영남당이라고 할 수 없다.”(2월12일)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고 역할이다.”(3월1일) 심지어 “당을 나간다 안 나간다 하는 얘기 자체가 후진적 정치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탈당의 변은 ‘말 바꾸기’ 차원도 넘어선 ‘말 뒤집기’다.

    셋째, 한국정치의 고질인 ‘승리 지상주의’의 전형에 가깝다. 대선만 다가오면 정당을 급조해 무원칙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후진적 정치 행태를 그 역시 답습하고 있다. 그의 탈당이 경선 이전이라고 하지만 1997년 9월 이인제 의원이 신한국당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뒤 창당에 나선 사례와 그리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우리 시각이다. 스스로도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겠다”며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들어 범여권 후보로 나설 의향임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는 탈당을 퇴행정치로 볼 수밖에 없게 하는 윤리·신의 문제와 승리 지상주의 함몰의 세 측면에 대해 명쾌하고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