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가 쓴 '어정쩡한 재개정은 안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먀 소개합니다. 

    2005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사립학교법은 ‘공공성’이란 주문(呪文)을 앞세우고 사학의 사적 자치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악법이다. 사학계와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봉착한 정치권이 뒤늦게 재개정을 논의하고 있으나 종교계 사학과 기타 사학을 구분하려는 등 불순한 의도를 버리지 않고 있어 과연 원만하게 처리될지 알 수가 없다.

    개정 사학법은 사학법인 이사의 일정수를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 임명하도록 하고, 관할 관청이 사학법인 임원의 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하는 등 사학에 대한 간섭을 대폭 강화했다. 이 조항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국회가 재개정하지 않으면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회부될 것으로 생각한다.

    2005년에 개정된 조항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학법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학법은 일제강점기의 총독부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어 사학을 옥죄는 면이 많다. 한일강제합방 직후 일제가 제정한 사립학교 규칙은 사학 설립에 총독부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학교장과 교원의 변경에도 총독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로 인해 불과 5년 만에 2000개가 넘던 민족 사학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지금같이 정부가 사학의 임원 취임을 승인하고, 일정한 경우에는 정부가 임원 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은 5·16군사정변 후부터다. 부정부패 일소를 혁명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시 군사정부가 이 같은 법률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권한을 매우 조심스럽게 행사했고, 그 때문에 학생 선발권 등 자주적 권한을 상실한 우리의 사립학교도 지배구조만은 보장을 받아 왔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사립학교는 일단 설립 인가를 받으면 설립자의 손을 떠나서 공공에 위탁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행하더니, 학내 분규를 이유로 정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해서 사학을 사실상 ‘접수’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어떤 사립학교에선 임시이사가 학교 재산을 탕진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교에서는 임시이사가 멋대로 정식이사를 선임하기도 했다. ‘공공성’이란 미명(美名)을 내걸고 사유재산권을 허무는 좌파의 마각(馬脚)이 사립학교에서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이런 문제는 임원 승인권과 취소권을 정부에 부여한 사립학교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사립학교법이란 특별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대만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일본과 대만의 법에는 임원 승인이나 임시이사 같은 제도가 없다. 사립학교가 많은 미국의 사립학교는 단순히 사법상 행위로 설립될 뿐이다. 하버드 등 명문 사립대는 설립자가 재산을 기탁하는 데 그치고 운영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설립자가 그렇게 의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지타운, 로욜라, 웨슬리언 등 가톨릭 및 개신교 교단이 세운 사립대는 교단이 경영하고 있다. 종교계 대학의 이사회 구성에 대해 정부가 간여한다는 것은 미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다.

    미국에서도 개인이 사재를 털어 사립학교를 세운 후 직접 경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미노 피자 회사 회장이 대학을 세우고 이사장이 되어 화제가 됐는데 이런 사학은 설립자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이다. 설립자가 운영하는 사학도 세월이 흐르면 대개는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사학은 대부분 설립자가 학교법인을 세우고 스스로 책임지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대(代)를 물려 사학을 경영하기도 하며, 그 같은 폐쇄적 운영으로 인해 학교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심판받는 것이 원칙이다. 사립학교도 궁극적으론 시장(市場)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정부가 사학의 지배구조를 건드려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만일에 어떤 사립학교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문제된 행위에 대해 행정 및 형사상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이지 사학의 경영권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립학교법을 혁파하고, 교육에도 선택과 경쟁의 원칙을 도입해야만 우리의 교육이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