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 사람들이 서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때 빈둥빈둥 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자신의 돌출 발언에 대한 정치권의 확대해석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시장은 2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통섭정경연구원 창립대회에 참석해 "산업화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시대도 있었고, 민주화 속에서 산업화가 이뤄져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서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하는 관계가 돼야 하는데 어쩌다 각 시대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게 됐느냐"며 "모두가 국가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세대"라고 덧붙였다.

    이날 창립한 통섭정경연구원은 6.3 동지회 회원들이 주축인 모임으로 이 전 시장 지지 성향의 학계, 정계, 재계 인사 5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통섭'은 '큰 줄기(統)'와 '잡다(攝)'가 합해져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를 잡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섭연구원은 "동서남북에서 갖가지 요소들이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오늘날 사회에서 분열과 혼란을 수습해 통합으로 나간다는 뜻"이라며 의미를 더했다. 이 모임 회장을 맡은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은 16대 국회의원, 6.3동지회 2대 회장을 지냈으며 이 전 시장과 각별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전 시장은 축사에서 "각자 개성을 살리면서 힘을 모아, 부족한 점을 서로 메꿔주고 또 남의 장점을 내가 빌려쓰면 우리 사회가 국민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화합과 협력을 강조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을 떠올리며 이 전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나의 힘은 10%였고 나머지 90%는 공직자, 시민, 이해당사자들 등의 힘이 모여 이뤄진 것"이라면서 "많은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혼자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나더러 자꾸 웃으라고 하고, 웃으면 눈을 크게 뜨라고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눈뜰 재주는 없다"면서 "사람들은 두개를 한꺼번에 요구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예를 들기도 했다.

    "민주화 산업화 모두 귀한 존재"…'빈둥빈둥' 돌출발언 서둘러 진화
    이만섭 "이명박, 아마 아량있게 (대통령) 할 것" 눈길

    앞서 축사에 나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 전 시장을 '예의범절이 있는 인물' '반대자, 비판자도 모시는 아량있는 사람'으로 높이 치켜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의장은 "추최측이 일정이 바쁜 이 전 시장을 먼저 축사하도록 했지만, 이 전 시장이 기어이 양보했다"며 "이 전 시장은 예의범절이 있는 분이구나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초선의원들도 맞먹으려고 하는데 상당히 끝발있는 분이 (나는 은퇴해) 쉬고 있는데도 (예의를 지켰다)"라며 칭찬을 이어갔다.

    이 전 의장은 또 노무현 정권의 코드정치를 강력히 비난하며 "(대통령은) 절대로 코드를 따지지 않고, 삼고초려 해서라도 반대하고 비판한 사람을 모시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며 "이 전 시장은 아마 그렇게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9선 의원 출신으로 "동료의원을 '앞으로 나라 위해 일할 사람'은 동그라미, '해도 되고 안해도 되면' 삼각형, '절대 안되는 사람'은 가위표를 각각 해 분류해 봤다"는 이 전 의장은 "14대 때 이 전 시장에 대한 평가를 보니까 동그라미를 쳐놨더라"고도 했다.

    "남과 싸울 일 많은 데 우리끼리 싸울 수 없다"
    "검증받을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모양…당의 평화를 위해 나혼자가 낫다"

    이어 서울시내 한 중식당에서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회 주최로 열린 '전국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워크숍'에서도 이 전 시장은 "나는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함께 살았다"며 오전 발언의 파문진화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시장은 검증논란과 관련해 "당에서 상대후보를 검증할 것이 있으면 자료를 내라고 했지만, 나는 '검증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사무처 직원에게 말했다"며 "남과 싸워야할 일도 많은데 우리끼리 싸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절대 안된다고 소리지르는 북한, 지금은 코너에 몰려있지만 어느 시기에 가면 뭘 하려고 할 여당도 있다"며 거듭 '화합'을 주장했다.

    이 전 시장은 이어 "나는 검증을 누구에게라도 받을 것이며, 지금도 받고 있다"며 "검증받을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라며 여당과 당내 경쟁자들의 집중공격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곧이어 이 전 시장은 "그러나 검증하려 들면 (후보들이) 다 복잡해질 것"이라며 "나 혼자 검증받는 것이 당의 평화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이 전 시장은 오전 바른정책연구원 주최로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 세미나 강연을 시작으로 통섭정경연구원 창립대회 축사, 전국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워크숍 특강 등 빡빡한 일정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