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 '이명박·박근혜 더 싸워도 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고문 한나라당 대선후보 유력 경쟁자인 이명박씨와 박근혜씨에 대한 검증은 더 철저해야 한다. 두 사람의 공방이 도(度)를 넘으면 서로 공멸할 것으로 우려하는 견해도 있고, 두 사람이 이 상태로 가다가는 결국 경선 전에 갈라서 독자 출마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절반이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하지만 철저한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면 대선 주자로서의 생존력을 잃는 결과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 살리기’와 ‘안보 바로 세우기’가 이번 대선의 중심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노무현정권이 결딴낸 나라살림과 경제를 되살리는 문제, 좌파들이 허물고 있는 안보와 동맹의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화두는 사석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사항’과 ‘옛 이야기’에 쏠려 있다. 재산관계는 어떻게 되며 남녀문제는 어땠으며 가족관계는 어떤가 등이 세인의 관심사다. 심지어 두 사람이 직접 나서서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안다”느니 “군에도 안 갔다 온 사람이 어떻게 군통수권자가 될 수 있느냐”는 등의 공방을 벌였을 정도다. 결국 사람들은 각기 자기들이 들은 소문과 누군가 재생산한, 그럴 듯한 얘기들로 화제를 삼고 이런 것들이 막판에 터지면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실제로 그렇다. 정책을 보고 비전을 듣고 국가운영의 능력을 감안해서 표를 찍는다고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과 윤리적 경험칙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다시 말해 아무리 정책이 훌륭하고 지도자적 역량이 우월하다 해도 표는 그 후보의 과거와 사생활, 그리고 거기서 연유하는 도덕·윤리성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과거 한나라당의 선두주자가 ‘김대업’으로 쉽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지금은 지리멸렬한 상태지만 범여권이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지난 두 번의 대선 때처럼 한나라당 주자의 실수와 개인문제가 막판 변수가 되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두 후보 경쟁자는 ‘먼지’가 있으면 지금 그것을 털어야 한다. ‘상호비방’ ‘인신공격’ ‘음해’ ‘네거티브’ 등의 비판과 비난이 싫고 두려워 그냥 묻어두고 넘어갔다가 이것이 막판 본게임에서 여권의 ‘무기’로 둔갑할 때 오히려 대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검증을 둘러싼 공방은 당과 후보자에게 득이 되기도 한다. 우선 지난번 여당의 경우처럼 경선의 양상을 치열하게 하고 그것으로 경선을 ‘잔치’ 삼아 국민의 이목을 끌 수 있다. 둘째 각 경선경쟁자들의 약점과 단점을 사전에 공개함으로써 그것을 방어할 시간과 논리를 주고 면역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히려 해명의 기회일 수도 있다. 셋째 상대방의 폭로나 지적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드러났을 때 그것은 상대방의 마이너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먼지’ 없는 사람이 반드시 유리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보자의 ‘사생활’과 ‘단점’ 등이 묻힌 채로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에 나설 경우, 그것이 뒤늦게 쟁점이 돼 패배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마치 남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이 끝내 생존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경쟁자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이중자해(二重自害)로 귀결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검증과 비방은 다르다. 검증을 명분으로 삼은 모략과 중상은 그것대로 경선에서 당원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요체는 비방과 분열의 그림자가 두려워 검증을 소홀히 할 때 오는 결과로, 그것은 당원의 오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볼썽사나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썽사나울 것이 두려워, ‘저들은 노상 싸운다’는 일부 유권자의 비난과 여권지지층의 흑색선전이 두려워,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넘어간다면 그 결과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지지층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근자에 “선거는 조용히 치르면 안 된다. 시끄러워야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다. 더 시끄러워도 된다”고 말했다. YS의 관점도 바로 검증의 시끄러움이 불가피한 통과의례라는 것임을 일러주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부터 상대방의 과거 들추기와 공격에 대응하고 대비하는 훈련을 하는 것도 검증의 덕목 중 하나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