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5일 사설 <'민족' 간판 내리는 민족문학작가회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2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모레 정기총회에서 '민족문학'이라는 명칭을 빼기로 했다. 새 이름으로 '한국작가회의''한국어작가회의' 등이 거론된다. 명칭 변경에 대해 작가회의 측은 "요즘 한국문학이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다 외국과 교류할 때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극우파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고 설명했다. 세계화 시대에 편협한 민족주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조치라면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성향이 강한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계기로 근본적 변화를 보여줄지는 의문이다. 특히 강한 정파성과 북한 인권.핵무기 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그렇다.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등에 반대하는 한편 북한 정권에는 우호적 자세로 일관해 왔다. 재작년 남북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두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서는 작가회의 소속 문인이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로 시작하는 김남주의 시를 낭송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저지른 직후에는 북한 문인들과 함께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을 금강산에서 개최했다. 한편으로는 작가회의 출신들이 문화예술위 기금 배분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구설이 나돌고 있다.

    작가회의 측은 새로운 이름을 내걸 단체에 대해 "6.15 민족문학인협회의 하위 개념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북측 문인들이 독재정권에 예속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6.15 민족문학인협회는 자칫 남측만 이용당할 수도 있는 단체다.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아 '민족'을 뺀다면서 같은 단어를 앞세운 단체의 하부 조직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것도 큰 모순이다. 그러니 벌써부터 작가회의가 정파성을 호도하려고 적당히 명칭만 바꾼다는 힐난이 나오는 것이다. 단어 한두 개 뺀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작가회의는 근본부터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