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울산광역시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공장은 입구 찾기도 힘들었다. 150만 평 규모에 출입구만 18개다. 정문을 통과하자 노조가 농성하는 천막 13채에 꽂힌 ‘투쟁의 선봉’ ‘노동탄압’이라 쓰인 붉은 깃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 본관에는 ‘정몽구 윤여철 즉각 퇴진하라. 성과금 50% 당장 입금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본관 안에선 스티로폼 위에 깔아 놓은 전기담요에서 노조원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

    30대 조합원은 “불법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안다. 이번 파업은 밀린 돈을 받기 위한 정당한 싸움”이라고 했다. 노조 송희석 대변인은 “회사가 여론을 핑계로 파업을 유도했다”고 했다. 한 노조 간부는 기자들을 휙 둘러보더니 “×××들, 똑바로 써”라고 고함을 쳤다.

    노조원들이라고 다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점심 때 식당에서 만난 노조원은 “바깥 사람들은 우리가 노조 집행부에 끌려 다닌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조합원이 행여 말 한마디 잘못하면 안에서 곧바로 욕설이 날아온다. 대의원들이 컨베이어벨트를 세우면 우리는 임금이 날아간다”고 했다. 40대 노조원은 “작년에만 정치파업을 열 번 넘게 했는데 연초부터 또 이런 짓을 벌이다니…”라며 혀를 찼다. 그는 17일 노사협상 끝에 성과금 문제가 타결됐다는 소식에 “이번엔 결판이 났어야 되는데”라며 못마땅해했다.

    “解放區해방구라고 해야 하나? 옳지. 울산 ‘코뮌’이 맞겠다. 노조가 무슨 짓을 해도 말 한마디 못하니.” 한 관리직원은 울산이 혁명시절의 파리코뮌처럼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노조가 週初주초에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이면서 이탈자를 막으려고 구내식당의 점심 配食배식을 막았고 노조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출입구도 봉쇄했다고 했다.

    현대자동차에선 조합원도 회사측도 모두 노조를 무서워한다. 현대차 간부는 “이미 10년 전부터 생산현장 권력이 노조 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작업 지휘 권한이 부장, 차장 대신 노조 간부들 것이 됐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 간부만 되면 직급이고 뭐고 깡그리 무시한다”고 했다. 회사 자료를 보면 노조 간부는 기본급과 수당에, 차·기름값·교통범칙금까지 회사로부터 제공받는 것으로 돼 있다. 350평이나 되는 노조 사무실 비품 값도 회사가 대준다. 前전 노조위원장이 재임 때 파업을 벌여 놓고 회사로부터 2억원을 받아 구속된 얘기를 꺼내자 한 노조원은 “준 ×도 잘한 거 없다”고 했다.

    이 바람에 죽어나는 사람은 따로 있다. 姓성을 ‘신’이라고만 밝힌 비정규직 근로자는 “노조가 殘業잔업을 거부하는 바람에 임금이 얼마나 깎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다 주변을 돌아보며 얼른 입을 닫았다. 다른 비정규직은 “보름째 (잔업거부로) 공쳐 다음달 아이들 학원비나 낼지 모르겠다”며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문제로 왜 이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했다. “노조는 비정규직이 입는 피해는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더라”며 어처구니없어했다.

    10년째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한다는 회사 사장은 “현대차에 목을 맨 552개 협력업체도 人質인질 신세”라며 “작년에도 열 번이나 회사가 스톱했는데 연초부터 또 이 모양이니 불안해 죽겠다”고 했다. 다른 부품업체 간부는 勞使노사간 협상타결 소식을 듣더니 “회사가 이번에야말로 버텼어야 했는데…얼마 안 가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노조는 노조 창립 20년 만에 19년 파업 기록을 세웠다. 울산 사람들이 이 속을 모를 리 없다. 한 음식점에 현대차 점퍼를 입은 젊은이가 들어서자 손님들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젊은이는 당황한 듯 머뭇대다 그냥 나가 버렸다. 중심가 돼지국밥집 여주인은 “옛날에는 (현대차의) 군청색 점퍼만 보고도 외상을 줬지만 지금은 귀싸대기감”이라고 했다. 현대차 대의원들 복장인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은 손님으로 받지 않는 갈빗집도 생겨났다.

    49개 울산 경제단체 대표자들은 16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차 주인은 勞使노사가 아니라 국민이다. 회사가 이번에는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만난 대학생은 “2년 전 입사한 선배가 ‘자동차산업이 망한다는데 자꾸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더라”며 “파업 또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1967년 세워져 꼭 40년 된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정규직 2만8000명과 비정규직 8000명이 일하고 있다. 협력업체 근로자도 4만1000명에 이른다. 울산시청 사람은 “울산에서 현대차로 생계를 꾸리는 근로자와 그 가족만 20만명이 넘는데 그런 회사가 노조에 목덜미를 잡혀 있다”고 했다. 울산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노조가 너무 억척스러워 회사 얘기는 안 했지만 솔직히 회사도 잘한 거 없다. 울산이 세계도시가 되려면 현대차의 경영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사람들은 17일 오후부터 들려온 성과금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도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만에 하나 현대차 노조가 정상 노조로 돌아온다 해도 현대차의 경영시스템이 함께 획기적으로 개혁되지 않으면 해외에서의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런 기적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한국 수출의 4.4%를 감당하고 울산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현대차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걸 울산 시민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