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 사설 '국가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7년은 나라의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다. 올해의 일 가운데 좋은 지도자를 뽑아 나라와 국민이 희망과 의욕을 되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2003년 2월 25일 이 나라에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몇 달도 흐르지 않은 때부터 우리 국민은 나라의 지도자란 무엇인가, 나라의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지난 4년은 국가 지도자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논란이 하루도 그칠 사이 없던 세월이었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국민 모두가 지도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제도다. 기회 균등의 사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고 해서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품성과 자질의 검증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 국가 지도자를 둘러싼 혼란과 혼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누구나 지도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사회’와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분명하게 구분 짓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돌아보면 2002년 12월 19일 우리의 선택이 그랬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국가 지도자의 품성과 자질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혼란은 그 뿌리가 지도자의 혼란에 있다. 지도자의 혼란은 바로 정치의 혼란이다. 수천년을 내려온 동양의 정치적 지혜 ‘대학(大學)’은 ‘기본이 흐트러졌는데도 그 말단이 바로 될 수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라고 했다. 우리 나라 지금 형편이 그렇다. 지도자가 헤매고 정치가 어수선한데 어떻게 경제가 바로 서고,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고, 국민을 단합하게 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고, 집값을 잡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국민의 걱정을 덜 수 있겠는가.

    지도자와 정치가 ‘국민을 옳고 건전하게 키우고 보살피는 사명(政在養民)’을 저버린 것이다. 지금 여당과 야당 또 그 중간 지대에서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꿈을 말하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라를 이끌어 갈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귀에 단 말이다. 그러나 4년 전 귀에 단 말에 홀려 선택을 그르쳤던 우리가 다시 그 길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다.

    국민이 이번에도 선택을 그르치게 되면 대한민국은 선진화의 고속도로로 올라탈 인터체인지를 영영 놓치게 되거나 다시 그 기회를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만큼 지난 4년 동안 나라와 국민이 모두 지쳤다. 몇 년째 계속된 성장 지체증은 만성 저성장으로 고착되고, 노령화의 심화는 경제활동인구 감소와 복지 지출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자주라는 ‘말의 호사(豪奢)’를 위해 지출되는 수백조원의 국방비 부담이 얹혀지면 꺼져가는 경제의 엔진은 주저앉고 말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지난 10년 가까이 세계 공통의 선진화 화살표를 거슬러 혼자서 거꾸로 달려왔다.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가 작은 정부로 향할 때 한국은 큰 정부 쪽으로 달려갔고, 중국·인도·브라질·호주·멕시코가 고성장 저규제·경쟁 강화·노동시장 유연화로 나갈 때 한국은 저성장 고규제·평준화·노동시장 경직화 쪽으로 역주행을 거듭해왔다. 지금부터는 국민들이 이 겁 없는 역행과 역주행의 대가를 치를 일만 남았다. 그뿐 아니다. 김정일의 북한이 핵 도박을 계속하든 포기하든, 그 비용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꺼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라의 지도자를 다시 뽑아야 하는 올해 나라의 안팎 상황이 이렇다. 지도자 후보들의 품성과 자질을 다는 저울의 티끌만한 오차가 국가위기로 번져갈 수 있는 살얼음판이다.

    현 상황에서 다음 대한민국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제1의 덕목은 관용과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다. 이 정권이 지난 4년 내내 한 나라 한 국민을 이 국민과 저 국민, 이 조직과 저 조직, 이 지역과 저 지역, 이 계층과 저 계층으로 갈라 놓음으로써 번져가기 시작한 미움과 증오, 질투와 질시, 갈등과 분열, 반목과 불화, 복수와 보복의 사회 분위기가 깊게 파 놓은 국민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게 하는 것이다. 이 치유의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한(恨)과 원(怨)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 먼저 마음이 흐르고 뜻이 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옛말에 ‘분(忿)해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라고 했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뒤에 혹시 분노와 한의 멍울이 없는지를 단단히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4년은 분노의 대통령과 대통령의 분노를 먹고 사는 어둠의 자식들이 나라의 판을 이렇게 짜 나라와 국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음에 국민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항목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오늘까지 140개 나라가 식민지에서 독립해 새 나라를 세웠다. 그들 앞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의 길과 공산주의 국가 독점 체제의 두 길이 뚫려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 건립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체제의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따라 6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이제 세계 12번째 규모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세계 경제를 확대성장의 궤도로 이끌고 온 서방 진영의 일원으로서 세계 최강의 국가를 동맹국으로 선택했던 대한민국 건립자들의 지혜와 결단의 결과다.

    김일성·김정일의 북한은 그 기간 동안 전제화 세습화 궁핍화의 길을 걸어 결국 전 인민을 인간 생존의 극한으로 내모는 불량 국가가 돼버리고 말았다. 다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쌓아온 이 ‘성공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퇴보와 추락의 길’로 오도하려 했던 사이비 개혁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기필코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와 성공의 계단을 밟아 올라 세계 10위권의 나라를 만든 경험을 지닌 드문 국민이다. 우리가 관용과 화해와 용서의 품성에다 대한민국과 그 역사의 정통성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을 고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잃어버린 목표를 되찾아 꿈을 다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12월 19일은 이런 국민과 이런 지도자가 만나 세계가 우러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천년의 꿈을 펼칠 수 있느냐가 결판나는 운명적 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