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김영수 산업부장이 쓴 '하니닉스 반도체 우사장의 전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4월. 하이닉스 반도체 우의제 사장은 일주일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경찰이 “테러 위험이 있다”며 “가족 모두 피신하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주에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사내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서울 강남 본사에 상경, 사장실을 무단 점거하며 농성을 벌였다. 사장실 난입 과정에서 기물이 부서지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경찰은 우 사장의 신변보호가 어렵다며 알아서 피하라고 했다.

    사건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도체 공장 내 장비 청소를 맡은 하청업체 한 곳이 전격 폐업하면서 회사측은 청소 용역을 다른 곳에 맡겼다. 그러자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본사가 고용을 보장해 달라”며 투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하청업체 노조원을 지원했고, 분규는 여태껏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포스코와 건설노조 간에 벌어졌던, 하청업체를 둘러싼 분규와 같은 양상이다. 하청업체의 문제를 본사가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 사장은 마음 고생이 심했다. 서울역 한복판 길바닥에 자신의 얼굴이 담긴 커다란 사진을 깔아 놓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다든지, 고속도로 청주 IC에서 공장에 이르는 길에 검은색 리본을 걸어 놓고 ‘○○○를 죽여라’라는 빨간색 스프레이 글자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헌법 위에 ‘정서법’, 그 상위에 ‘떼법’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 사장은 주변에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냥 고용을 보장해 주고 넘어가라”는 충고를 숱하게 들었다. 심지어 공무원들이 나서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거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이닉스는 수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공적자금)이 들어가서 간신히 회생한 기업입니다. 지금은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순익을 내고, 6조원어치 반도체를 수출하는 기업이 됐습니다. 여기서 법과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민주노총이 하이닉스를 투쟁 핵심 사업장으로 지목했기 때문에 우 사장의 외로운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법과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한다.

    하이닉스 문제는 단순히 기업 하나의 노사 분규가 아니다. 하이닉스의 문제는 같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만약 하이닉스가 하청업체 노조원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면 삼성전자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일부 대기업 노조가 주도하는 노동 운동은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지시로 11월 한 달에만 무려 네 차례 부분 파업을 벌인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 노동 운동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가 망하든지 말든지 올해 들어 일곱 차례나 파업을 벌인 탓에 파업 피해액만 1조 5000억원을 넘어섰다.

    강성 노조로 유명했던 영국 자동차 회사들이 몽땅 망해서 다른 나라에 줄줄이 팔려간 다음, 수만 명이 구조조정당했던 선례를 따라서는 안 된다. GM·포드·크라이슬러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전미(全美) 자동차 노조는 지금은 유명무실하다. 회사가 심각한 적자로 줄줄이 공장 문을 닫는데 노조원의 설 자리가 있을 리 없다. 한국을 먹여 살리는 수출 기업은 노조의 것이 아니다. 장래의 일자리를 걱정하면서 절제되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펼치는 현명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