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정기 논설실장이 쓴 시론 '노대통령 한마디의 5대 오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마디 하겠다.”
이렇게 다잡은 노무현 대통령의 28일 국무회의 공언은 줄잡아 다섯 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첫째, 헌법 수호책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인식부터 걱정스럽다. 노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 ‘굴복’을 말문으로 삼았다 -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그런데 어제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다. 굴복한 것이다.”
적시한 그대로 직전 27일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지명을 철회한 전후의 심경을 가급적 크게 들리게 하자는 뜻은 두루 짚인다. 그렇더라도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와 ‘굴복’을 함께 말하는 것은 대통령의 화법일 수 없다.
헌법을 준수·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책무는 헌법 제66조 2항과 제69조 명문이 아니더라도 법치국가 원리가 먼저 말해준다. 전효숙 지명 철회와의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위헌·불법행위라면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맞서야 한다. 그 위헌과 불법을 앞두고 굴복을 말한다면 그 자체로 법치국가 원리가, 또 헌법 명문이 부여한 의무의 심각한 위반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전효숙 사태 그 위헌 원죄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또 버릇같은 남탓이다.
돌이켜 노 대통령이 8월16일 전효숙을 헌재소장에 지명하고 8월22일 국회 임명동의 요청 때까지는 또 코드인사냐라는 논란이야 어떻든 그 자체가 헌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국회가 동의하면 전효숙은 잔여 3년 임기의 헌재소장으로 2009년 8월25일까지 그 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일을 노 대통령이 뒤틀었다. 국회에 임명동의 요청한 지 사흘 만인 8월25일 그의 사표를 수리하고 3+6, 9년 임기로 늘려주려 하면서 헌법 제111조 4항 명문을 뒤튼 것이다.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재소장 선임 명문을 어겼으면서 그래도 헌법을 거론한 노 대통령이다 - “헌법과 국민이 준 기회여서 중도진보 성향의 헌재소장 임기를 최대한 확보해주고 싶었다.”(9·28, MBC 토론)
노 대통령도 ‘전효숙 헌법재판관+헌재소장’의 ‘인사청문+임명동의’ 요청으로 바꾸는 등 절차의 잘못을 고쳐보려고 기를 써왔다. 전효숙 인사가 혹 관철되고 또 이를테면 6년이 다 가기 얼마전 쯤 노 대통령과 비슷한 헌법관의 어느 대통령이 다시 사표받으면서 헌재소장 임명동의를 요청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전효숙의 3+6+6년’이 안된다면 바로 그 이유로 ‘전효숙 3+6년’은 어불성설이다. 노 대통령은 ‘전효숙 9년’ 표결 방해를 위헌이라 했지만 국회에서 방해받지 않고 그 표결이 강행된다면 그게 먼저 위헌이다.
셋째,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걸리고 있어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언급은 어폐가 있다. 대통령 인사권은 주권, 곧 민심을 좇아 헌법과 법률에 의해 행사돼야 한다. 민심과 헌법·법률을 벗어난다면 인사권도 뭐도 아니다.
넷째, 대통령직과 당적 관계에 대한 인식도 좀은 뒤틀려 있다 -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 가지뿐이다. 당적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몰리면…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직보다 당적을 먼저 말한 것도 어색하지만 직전 제16대 국회의 탄핵소추로부터 구해준 헌재의 2004.5.14 결정문 한 구절을 빌리면 ‘당적 포기 = 불행’은 더 어색하다 - “대통령은 여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행정권을 총괄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익실현의 의무가 있는 헌법기관이다…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목 역시 듣기 민망하다. 혹…그야말로 혹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다 해도 그 첫번째는 이미 아니다.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까지는 임기를 다 마치지 못했고 이후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은 다 마쳤다.
무엇을 기준으로 ‘첫번째’라고 했을까. 혹…아직 9.9%쯤 남았다는 지지층의 누선(淚腺)을 자극하려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