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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세상만사'란에 이 신문 성기철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다수 미국인은 20세기 최악의 대통령으로 지미 카터를 꼽는다. 퇴임 후 평화·인권운동으로 이미지가 개선되긴 했지만 재임중 매우 무능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문가 그룹에서도 유사한 답이 나온다.
저명 언론인이자 대통령학 연구자인 네이슨 밀러는 저서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김형곤 옮김)에서 카터 대통령이 가장 나쁜 평가를 받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 좀 길게 소개한다.
첫째, 그는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말 무엇을 할 것인지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다.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적 감각도 부족했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지도자였다. 둘째, 스스로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로 생각하고 주류 정치가들의 조언을 거부했다. 국가 대사에 대해 무지한 ‘조지아 마피아’의 조언을 신뢰함으로써 실수를 거듭했다. 셋째, 그는 너무나 독선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믿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프로그램을 성취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일반 국민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인물이 세계 제1 강국 지도자로서 적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파악했던 모양이다. 카터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국민 지지율은 약 13%였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쫓겨날 당시 지지율이 24%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인기 없음’을 짐작할만도 하다. 뚜렷한 업적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은 군주제 국가의 왕처럼 국민통합의 상징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돼야 한다. 어느 나라 국민 할 것 없이 훌륭한 대통령을 갖고 싶어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로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에겐 큰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인기는 리더십의 핵심적 자산에 속한다. 인기가 높을 경우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기가 쉽고, 의회의 도움도 어렵잖게 받을 수 있다. 결국 효율적인 국정수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볼 때 2006년 11월 현재 대한민국은 불행하다. 4800만 국민 대표인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13∼16%로, 정치 여론조사가 본격화된 이후 최악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직후 60%대에서 불과 반 년만에 20%대로 떨어지더니 최근 6개월 사이에는 10%대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말년이 시원찮았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이맘때 지지율도 30% 전후를 유지했다.
사실 노 대통령의 지지율로는 국정수행 자체가 어렵다. 국민이나 언론이 국정 현안에 사사건건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노 대통령도 이런 점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는 지난 5일 경기도 포천 평강식물원을 방문해 그곳 이환용 원장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너무 인기가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에 이 원장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위로하면서 자신이 쓴 기독교 서적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선물했다.
노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인기 없음을 스스로 걱정한 것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는 평소 인기나 선거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옳은 정책을 소신대로 밀고 나가면 언젠가 국민이 알아주고, 역사도 좋게 평가해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10%대 지지율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식물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남은 임기라야 1년 3개월뿐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인기, 국민 지지율은 여론을 따르기만 하면 금방 상승할 수도 있다. ‘조지아 촌뜨기’였던 카터 대통령의 스타일을 하루빨리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