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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잘못 만나면 백년을 고생한다

입력 2006-11-18 12:04 수정 2009-05-18 14:42

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란에 이 신문 오창규 산업부장이 쓴 <'거대한 정부종합청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54년 7월2일.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정부는 시내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정부 청사를 한 곳에 집결시키기 위해 ‘거대한 정부청사’를 불원간 세종로에 있는 수도경찰전문학교 자리에 신축할 계획이다. 총공사비는 420만달러를 계상하고 있다. 동 건물은 11만평방피트의 부지에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187개의 사무실을 구비하게 될 것이다. 특히 내화성(耐火性) 있는 현대식 건물로 신축할 예정이다 ….”

현재 미대사관과 문화관광부 청사로 쓰고 있는 서울 세종로에 있는 쌍둥이 건물에 대한 얘기다. 정부의 ‘거대한 정부청사건립’이라는 표현에 코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정말 거대한 역사였다. 그때 정부의 주 청사는 일제가 조선총독부로 사용했던 경북궁앞 중앙청이었다. 정부 수립 당시 1실 11부 4처로 단출하게 출발했음에도 불구, 중앙청만으로는 공간이 모자랐다. 따라서 10개 기관이 여기저기 민간 건물에 산재돼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종합청사의 신축이 절실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돈이 없다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계획수립 7년 후인 61년 10월에야 완공됐다. 공사비 역시 대부분 미국 원조자금에 의존했다. 완공 후 한 건물의 사용권을 미국에 양도한 것만 봐도 사정을 알 수 있다.

1392년 조선건국에서 1910년 한일병합 때까지. 518년간 지속된 조선의 억상정책은 이토록 우리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만들었다. 정책실패의 결과로 가난과 식민지국가, 분단국가, 민족전쟁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이후 계속된 가난까지….

60년대 초 뒤늦게 항해를 시작한 ‘대한민국호’는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건물 하나 지을 수 있는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이 쌍둥이 빌딩의 설계와 감리 등 건축을 필리핀 회사에 맡길 정도였다. 1963년에 지어진 장충체육관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이었다. 필리핀 국민 소득 170달러, 태국 220달러 등…. 이때 한국은 76달러였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2003년 11월22일 김충배 육군사관학교 교장(중장)이 교내 강당에서 생도들에게 강의한 내용은 이같은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여러분들의 선배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일명 ‘코리안 밍크’로 유명한 쥐털 밍크수출을 위해 쥐잡기 운동도 벌였다. … 이방인의 시신을 닦는 간호사(파독간호사)와 1000m 땅굴에서 석탄을 캐는 두더지(파독광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월남파병과 사막(중동)의 노동자까지….”

이달말쯤이면 연간수출이 3000억달러를 달성할 전망이라고 한다. ‘3000억달러 수출대국’은 독일,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반도체와 휴대전화, 냉장고, 에어컨, 디지털TV 등이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얼마전까지 선망의 대상이었던 필리핀은 지금 총수출이 500억달러, 국민소득이 10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근 한국이 기업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히고 있다. ‘아버지를 잘못 만나면 3대(代)가 고생하고,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100년을 고생한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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