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란에 이 신문 이현종 정치부 차장이 쓴 <우려스러운 ‘박(朴)-이(李)’ 경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앞둔 그해 신년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은 한나라당에 승리의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나라당도 승리감에 도취돼 내부에서는 집권 후 자리 경쟁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DJP 단일화(97년), 국민경선(2002년)의 역전 드라마는 결국 한나라당과 이총재에게 2연패의 뼈아픈 상처를 남겨주었다.

    두번의 실패를 딛고 대권에 다시 도전하는 ‘삼수생’ 한나라당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세명의 후보 지지도를 합하면 60~70%를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에다 재·보선마다 승리, 의원수는 계속 늘어나고 인재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부동산 정책 등 하는 일마다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정계개편 논의로 분열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미 대권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행보와 의원들의 물밑 움직임을 보면 여전히 두번의 실패에 대한 반추가 없다는 느낌이다. 아직 대선이 1년이 넘게 남아 있음에도 대선주자들의 행보와 언행은 충돌 일보 직전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다. 지난달 말 이명박 전 시장이 독일 방문기간에 밝힌 ‘내륙운하’ 구상은 이미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독일 방문에 이어 13일에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저돌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으로 이슈를 선점했던 효과를 보겠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개인적인 안일 뿐”이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칫 이 전 시장이 만들어 놓은 이슈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내년초 인도와 두바이를 방문할 계획이고 박 전 대표도 이달말 중국을 방문해 새마을운동 알리기에 나서는 등 연말 연초 외유 경쟁이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경선방식을 둘러싼 신경전도 치열하다. 현재 국민여론 50%, 당원·대의원 50%인 경선방식에 대해 박전 대표는 고수입장을, 이 전 시장은 국민여론을 더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만간 경선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일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 줄세우기는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올라가자 친박(親朴)의 A 의원이 최근 이 전 시장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B는 양측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등 온갖 소문들이 돌아다닌다. 이같은 상황때문에 최근 ‘줄 안서기’를 표방하는 모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시간문제이지 이들도 양측 세력에 흡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양측 지지자들간의 ‘된장녀 - 노가다’ 비방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양 캠프는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우려, 같은 장소에서의 행사를 가급적 피하고 있다. 당내 일부 의원들은 “이러다가 경선도 해보지 못하고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당이 대선 주자들간의 과열경쟁에 휩쓸린 사이 당내개혁은 뒷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재야 운동가 출신인 인명진 목사가 파격적으로 윤리위원장에 선출돼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지만 당내 기득권에 막혀 소신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있다. 10·25 창녕군수 보궐선거에서 당 후보가 있음에도 해당 지역의원과 인근 지역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무소속 후보를 내놓고 지원, 당선시키는 명백한 해당행위가 발생했는데도 징계조차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승리감에 도취돼 도끼자루가 썩는지 모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