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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386이여, 잔치는 끝났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들은 요즘 ‘386 간첩단’이란 표현에 노골적인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곤 한다. 얼마전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장에서 만난 전대협 출신 한 의원은 대뜸 “어떻게 386 간첩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며, 화부터 냈다. 전대협 출신인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도 공개 브리핑에서 “유독 이 사건만 ‘386 간첩단 사건’이라고 표현함으로써 386 전체가 마치 간첩과 연루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지 알 수가 없다”고도 했다. 통상 간첩 사건을 부를 때 주범 이름을 쓰거나, 적발된 조직 명칭을 붙여 ‘○○○ 간첩 사건’ 식으로 부르는 데, 왜 이번에만 특정 세대 전체를 통칭하는 이름을 쓰느냐는 얘기였다.
역시 386 운동권 출신인 여당의 한 초선의원은 “1990년대 중반 기성 정치권에 참여키로 할 때,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미망(迷妄)은 다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결국 386에 대한 의문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386 자신들이다. 386 운동권 사이에서 주사파(주체사상파)가 득세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그들 내부의 증언을 통해서다. 함께 주사파로 활동했던 386들이 잇따라 양심고백하듯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1980년대 운동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당국이 적발한 간첩단 사건보다 이들 내부자 고발이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이번 ‘386 간첩단’ 사건에서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등 여권의 386들을 정조준해서 공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개 같은 386 운동권 출신들이다. 여권의 386들은 이들을 향해 “전향을 상품화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증언에 담긴 주장의 진실성을 따져보자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여권의 386들이 맞닥뜨린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이다. 주사파 전력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여전히 북한과 관련한 사안에서 이들의 태도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가령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북핵도 용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징벌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양비론(兩非論)적 태도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여권의 386들이 ‘북한 김정일 정권은 남한 진보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앞으로 두달 후면 386 세대의 80%가 40대가 된다. 1960년대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의 대부분이 이제 486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출생자는 대략 820여만명으로, 해방 후 다른 어느 10년보다 인구가 많다. 이중 운동권 출신은 극히 일부다. 이들이 386 세대를 대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386 세대(당시 30대)의 60.5%가 노무현 후보에 투표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노 대통령에게 가장 비판적인 세대가 됐다. 더 이상 노 대통령이 ‘386의 대변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386 출신 운동권만이 과거의 틀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주사파니 하는 생경한 용어들과 씨름하고 있다. 386 운동권 출신들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이제 잔치는 끝났다”고 나서는 일이다. 그래야 자신들을 숙주 삼아 번진 주사파의 생명도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