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19일 사설 '민노당, 한반도 평화가 노선보다 앞선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일주일 이상 지났건만 민주노동당은 공식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내홍만 전해진다.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특별 결의문을 채택하고자 했지만, 북한 핵실험에 대한 평가를 놓고 진통 끝에 공식 견해를 채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정당이라고 믿기 어렵다. 위기의 시대에 진보진영으로부터 통일된 시각과 대응방안을 기대했던 시민들로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균열은 시민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통일연대나 한총련 등 민족해방(NL·자주파) 계열의 단체들은 최근 ‘북한 핵시험은 예견된 것으로 흥분할 일이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민족공조만이 난국타개의 유일한 길’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잇달아 내놨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평가는 없고, 미국 책임론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으로 함세웅 신부,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 백승헌 민변 대표, 박원순·이수호씨 등 진보적 명망가 171명은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비핵화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동북아시아에 핵확산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핵실험 자체를 인류평화의 위협으로 보았던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오히려 남쪽의 진보진영에 먼저 깊은 균열과 상처를 가져왔다.

    한반도에서 평화는 절대적인 과제다. 잿더미 위에서 그나마 이룬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전쟁과 함께 순식간에 날아간다. 진보진영은 이 때문에 무엇보다 평화 정착에 앞장섰다. 북한 핵은 지금까지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협을 초래한다. 핵보유국과 비핵국 사이엔 애초 군사적 균형이란 불가능하고 평화공존도 어렵다. 비핵국은 핵보유국에 군사적으로 이끌려가게 된다. 국지전 발생 때 비핵국은 단호한 대응이 어렵다. 핵경쟁은 불가피하고, 이는 주변국으로 번진다. 그러면 동북아 전체에 신냉전구조가 조성되고, 한반도 문제는 남북의 손을 떠나 버리게 된다. 안으로는 경기가 침체되고, 군사비는 늘어나 서민의 삶은 피폐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노선 싸움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민족해방도 민중민주도, 자주도 평등도 평화가 전제돼야 꾀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는 어떤 노선보다 선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