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문창극 주필이 쓴 '어두움의 끝은 통일의 시작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밖이 소란했다. 북한이 핵폭탄을 발사했다고 술렁거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어디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빌딩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벌써 늦었구나. 나는 이미 방사능에 노출됐고 이제 곧 핵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절망이었다. 가위에 눌려 꿈에서 깼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아빠, 북이 핵실험을 했으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전쟁이 나는 거예요?"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6.25 때 수백만의 양민이 죽어 갔다. 김일성 때문이었다. 이제 또 우리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누구 때문인가. 미국 때문이라고? 핵 개발 포기 약속을 저버린 쪽은 북한이다. 왜 북한에 대해 이 순간까지도 관대해야 하나. 분명히 말해야 한다. 북한 때문이라고, 김정일 때문이라고.

    지금 이 나라에는 북핵에 대한 분석, 평가와 전망만 무성할 뿐 분노의 목소리는 없다. 겁을 먹었는가. 아니면 북한을 동조해서인가. 대통령부터 분노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술 더 떠 북한 입장을 이해해 주기에 바쁘다. 중국까지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만 마지못해 끌려가는 도살장의 소 같다. "대화를 열어 놓아야 한다"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더 이상 그런 얘기는 믿지 않는다. 포용이다, 햇볕이다 하며 너무 오래 참았다. 너무 많이 양보했다. 너무 많이 퍼 주었다. 그 퍼 준 돈이 핵으로 돌아왔다. 이런 식이라면 핵폭탄을 맞은들 변하겠는가. 그때가 되면 "두 번째 핵폭탄을 맞지 않으려면 양보해야 한다"거나 "살아남기 위해 나라를 북한에 넘기자"고 나올 것이다.

    '민족끼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민족을 멸살하고 있다. "우리에게 사용하겠느냐?" "방어용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핵폭탄에 공격용.방어용이 따로 있는가. 악을 보고 악이라고 왜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가. 분노해야 할 때 왜 분노하지 않는가. 북한에 '잘못한 만큼 너희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보.보수가, 전라도.경상도가 따로 없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전쟁을 해야 한다. 전쟁이 무서워 피할 때 우리는 볼모가 된다. 전쟁을 각오하고 나서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핵무기는 핵무기로밖에 막을 수 없다. 바로 공포의 균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 큰 전쟁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이 핵무장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쟁이 나면 서로 죽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우리에게 핵우산을 보장했다. 그렇다면 북핵은 공격무기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핵무기는 위협용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위협은 상대가 두려워할 때만 유효하다.

    어두움이 깊어지면 새벽이 온다. 북한은 마지막 어두움을 택했다. 어두움의 끝은 통일의 시작이다. 햇볕 때문이 아니고 북핵 때문에…. 역설이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가 아니다. 북핵이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포용이든, 햇볕이든 우리의 손을 떠났다. 유엔 제재는 앞으로 북한을 옥죌 것이다. 사치품 제재는 리더십 붕괴를 겨냥한 것이다. 북한 내부에 큰 변고가 생길지 모른다.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 국력 차를 벌려야 한다. 지금의 30배 정도가 아니라 50배, 100배로 벌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핵을 안고 고사할 수밖에 없다. 혹시 제재의 고통에 못 이겨 북한이 협상에 나오게 된다면 더욱 좋다. 그때는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북한을 도울 것이다. 우리 부담이 적어진다. 북한이 개방할 수밖에 없다. 북의 개방은 평화 공존을 가져올 수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개방하자 몰락했다. 어느 쪽이든 역시 통일은 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통일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도 핵을 가지겠다고 나설 경우 세계는 핵 확산을 우려해 우리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따라서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으며 중국.일본.러시아에 왜 한국으로의 통일이 동북아에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한다. 참으로 외교다운 외교가 절실한 때가 왔다. 외눈박이 친북 외교로는 우리마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 고립된 한국이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는가. 국제 제재에 성실히 동참해야 한다. 핵 도전은 오히려 통일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