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제야말로 누가 과연 참된 의미의 '민족' '민족주의' '민족 이익'에 역행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려야 할 시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허물어뜨리려는 모든 행위와 담론들이 결국은 '민족'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진영은 '반민족적'이고 김일성·김정일은 '민족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 식구들 먹여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독재자 김일성·김정일이 과연 '민족 이익'을 핵심으로 하는 '민족주의'를 들먹일 자격이 있는가?

    김일성은 우선 8·15 직후부터 소련 당국의 시시콜콜한 지령을 받으며 북한 지역에 공산당 1당 독재를 수립해 '우파 민족주의'와 '서구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족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며 압살했다. 공산혁명에 협조하지 않는 정파들을 아예 그렇게 씨를 말리려 한 것 자체가 '민족주의' 즉 '민족 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민족 통합'은 다양한 사상의 공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다원사회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지 김일성처럼 "우리에 반대하면 다 '반민족'으로 몰아 죽이겠다"로는 결코 이룩될 수 없다. 그리고 그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만 내세웠지 '민족주의'는 긍정한 적이 없다.

    김일성은 60년대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라는 '수령 절대주의'를 확립했다. 그가 '사회주의' 대신 '조선민족 제1주의' 운운하며 스스로 '민족주의자'인 양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그의 '주체' 운운은 신판 쇄국주의, '천황제'적 수령 독재 그리고 세계 최악의 '굶겨 죽이는 폭정'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대에 이르러….

    김정일은 소련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자신의 수령 독재가 위협받자 '선군정치'라는 군사 통치를 선포하고 핵·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개혁·개방 대신 남쪽을 약탈해 먹을 궁리를 했다. 이 약탈의 명분이 다름아닌 '우리 민족끼리' 선동이었다. 대한민국 세력, 자유민주 세력, 김정일 비판 세력을 모조리 '반민족'으로 몰아 자기를 구출해내고 먹여 살리라는 요구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찍소리 한 마디 못 질렀다. 이게 과연 '민족주의'인가?

    문제는 김정일의 이런 전략에 내응하는 세력이 우리 내부에 광범위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NL(민족해방)운동권이 그들이다. 그들은 반독재운동의 변두리에서 집적거리다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민주화운동'을 하이재킹 한 계열이다. 이들이 오늘날 '민족'과 '반미'를 내세워 온갖 행패를 다 부리며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할퀴어 놓은장본인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수호 진영을 '친미·친일 반민족'이라며 공갈 협박하더니 요즘엔 비판 언론에 대한 '백주의 테러'까지 발생했다. 테러를 하면서 범인들은 조선일보를 향해 '민족'의 적이라고 매도했다. 바로 "우리에 반대하면 다 '반민족'으로 몰아 죽이겠다"는 김일성·김정일·NL운동권 특유의 상투적 논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NL운동권은 그러나 우리 민족을 300만명씩이나 굶겨 죽인 김정일의 폐쇄주의, 국제 범죄, 인권 압살, '천황제'에 대해서는 '진보' '자주' '민족' '평등'이라며 편들어준다. 이 말도 안 되는 위선에 넘어간 '신도'들이 있는 한 그들의 유사 '성전' 테러는 언젠가는터지게 돼 있던 시한폭탄이었다.

    1936년 6월 16일 스페인 가톨릭계 정치 지도자 질 로블레스는 국회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나라 자체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 언론규제법을 거머쥔 인민전선 정권하에서 4개월 사이 269건의 암살, 160건의 교회 방화 그리고 10건의 비판 언론 습격사건이 있은 후에 나온 연설이었다. 우리에게도 김정일식 '가짜 민족주의'의 테러 내전은 이미 실제 상황이 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