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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DJ 방북'에 숨겨진 시나리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 14.6%’라는 보도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사람들 중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진짜 이러다가 노 정권의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 가는구나. 내년에 ‘김대중 제3기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면 햇볕정책의 운명은? DJ의 기념비적 어록을 떠올려 본다. “정치인은 ‘서생적(書生的) 문제 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 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서생적 감상에서는 노 정권이 밉다. 민주당을 깨버리고. 그러나 DJ 특유의 상인적 계산에서 햇볕정책의 미래를 점쳐 보자면 다음 정권은 반드시 노 정권을 계승하는 정권이 나와야 한다. 마침내 김대중은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7·5 미사일 난사(亂射)에 대한 자신의 상인적 현실 인식을 털어 놓았다. “하루라도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무슨 소리인가.
그러면서 김정일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노 대통령의 역할을 낚아챘다. “미국엔 어린애 장난감밖에 안되는 것을 가지고 미국의 네오콘이 악용하고 있고, 일본은 정말 악용이라고 할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더니 DJ는 다음날 부산대를 찾아 노 정권의 전시 작전통제권 2012년 이양계획에 손을 번쩍 들어 주었다. 역시 DJ의 암호같은 발언을 해독할 줄 아는 동교동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곧바로 ‘DJ 대북 특사론’에 다시 군불을 때기 시작했고, 김근태 당의장이 어제 동교동을 전격 방문했다. ‘김대중 제3기 정권’ 창출을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 구체적으로 보수·우파 세력의 대결집을 분쇄할 수 있는 비책은 남북정상회담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DJ 대북특사론에 숨겨져 있는 ‘음모적 시나리오’가 굴러 가게 된다.
만약 남북정상회담이 내년 1월초쯤에 열려 한반도 평화선언을 골자로 한 ‘제2의 6·15 공동성명’이 나오게 된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핵폭탄급 합의’는 좌파 세력들이 이미 다 준비해 놓고 있다. 현재의 정전협정은 우리가 배제된 굴욕적인 것이니 남북 우리 민족의 손으로 평화협정을 맺는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북한의 남침 의사가 없으니 중단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굴욕적인 정전협정에 따른 것이니 공동 어로수역으로 민족끼리 나눠갖는다. 이런 합의가 나오면 연로한 세력이 주도하는 보수·우익세력은 자주 깃발에 환호하는 젊은 세력으로부터 치명적인 도전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만 맞아 떨어지면 대선 구도는 극적으로 ‘젊은 세대 대 노인 세대’‘자주파 대 사대주의파’‘평화세력 대 수구냉전세력’으로 재편될 수 있다. 노 정권이 이런 시나리오를 놓칠 리 없다.
좌파·친노 방송 및 신문과 시민단체들은 보수·우파를 겨냥한 융단 폭격을 전개할 것이다. 여기에 가진자와 못가진자 간의 2 대 8 양극화 선동까지 퍼부으면 좌파 세력이 기선을 제압하게 된다. 이런 극적 반전의 와중에 여당의 대선후보는 65만명 국군을, 예컨대 30만명 정도로 줄이는 혁명적인 군비축소 계획을 터뜨리면서 병역 제도를 징집제가 아니라 지원병제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선언한다. 군대에 갈 연령대와 그 부모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다. 마치 수도이전 공약으로 충청도에서 몰표를 얻었던 방식 그대로. 여당 후보는 한국의 무기수입시장도 미국에서 벗어나 자주 국방을 위해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외칠지도 모른다. 한국군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기계적으로 계산해도 주한미군은 절반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한국군의 작전권 이양으로 무기라도 팔 생각이었던 미국은 ‘닭 쫓던 뭐’가 되어 손 털고 나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미국의 대북 압박으로 돈줄이 고갈되고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크다고 최종 판단되는 상황이 되면 ‘정상회담 장사’를 벌일 것이다. 기가막힌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DJ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유혹을 버려야 한다. 개인자격이든, 대북 특사로든. 설령 가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닥쳐 평양행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이쯤에서 정치를 접기 바란다. 자신과 나라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