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한나라당 대표실에선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고성이 터져나왔다. 대표실 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고성의 주인공은 이재오 최고위원.

    이날 오후 한나라당은 긴급 최고·중진회의를 열었다. 야3당이 '전효숙 사태'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야3당의 새 중재안을 회의테이블에 올렸다. 김 원내대표는 야3당의 중재안을 수용하자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강경파인 이 최고위원이 이를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야3당의 중재안을 내놓고 찬반을 통해 수용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하자 이 최고위원은 회의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친 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동료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는데 찬반투표를 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소리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홀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발걸음을 본회의장으로 돌린 이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의 입장변화는 없다. 그대로 간다"며 강경한 입장을 거듭 확인시켰다.

    나머지 최고·중진 의원들도 10여분 뒤 회의를 마치고 다시 본회의장으로 나왔다.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의원들은 매우 상기된 표정이었다. 중재안의 수용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 원내대표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입장변화는 없다"고 답했다. 이 최고위원이 큰소리 친 이유를 묻자 언짢은 듯 "큰 소리 친 사람한테 물어봐라"고 말했다.

    회의장에 참석한 다른 최고·중진 의원들 표정 역시 굳어있었다. 이 최고위원의 강성 기류에 야3당의 중재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강재섭 대표 역시 상기된 표정으로 "야3당 중재안이 애매모호하고 복잡하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한다"며 본회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취재진의 질문도 피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야3당 중재안에 대한 수용여부가 이 최고위원 한 사람의 주장으로 결정된 것이다.

    무엇보다 '전효숙 사태'로 강재섭-김형오 투톱은 리더십과 당 장악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날 두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 최고위원 뿐이 아니다. 앞서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의원총회를 열었다. '전효숙 불가'라는 당론은 정해졌지만 혹시 모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여당과 야3당의 본회의 강행처리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는 나름의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의원총회장에서 김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나를 믿고 맡겨달라. 한나라당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겠다"며 자신의 통솔에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회의장에서는 '실력저지를 하자'는 강경론과 '표결에 불참하자'는 온건론이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그러나 당론은 원내사령탑인 김 원내대표의 결정이 아닌 당내 3선 이상 중진들에 의해 결정됐다. 비공개로 진행되던 회의 도중 '전효숙 사태'에 강경파인 이재오 김기춘 안상수 김무성 김용갑 박희태 의원 등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갑작스레 회의장을 빠져나와 본회의장의 국회의장단석을 점거했다. 이들은 이날 별도의 오찬을 갖고 '실력저지' 방침을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이날 한나라당의 의장단석 점거는 당 지도부의 전략이 아닌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의 돌출행동이었던 것이다. 원내부대표단의 한 초선 의원은 "지도부는 강경하게 가자는 입장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런 강경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단상점거도 지도부 전략은 아니었다"며 "3선의원들 주장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강재섭-김형오 투톱의 당 운영이 점점 버거워지는 모습이다.